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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공룡은 냉혈일까 온혈일까 — 100년 학계 대논쟁

by hakung 2026.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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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2년, 영국의 해부학자 리처드 오언(Richard Owen)은 그동안 발견된 거대한 뼈들을 한데 묶어 ‘디노사우리아(Dinosauria)’라는 새로운 분류를 만들었습니다. 한국어로 옮기면 ‘무서운 도마뱀’. 그가 붙인 이 이름에는 19세기 사람들이 공룡을 어떻게 상상했는지가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커다란 도마뱀. 즉, 햇볕에 몸을 데우고 그늘에서 헐떡거리는, 굼뜨고 차가운 피를 가진 거대 파충류라는 이미지였습니다.

그 후 130년이 흐르는 동안, 학계는 공룡을 ‘느린 냉혈 동물’로 굳건히 그려왔습니다. 그리고 1970년대, 한 젊은 학자의 등장과 함께 그 모든 그림이 송두리째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오늘은 공룡이 정말 따뜻한 피를 가졌는지, 차가운 피를 가졌는지를 두고 100년 넘게 벌어진 가장 흥미진진한 학계 논쟁의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먼저 알아두기 — ‘냉혈’과 ‘온혈’은 사실 정확한 단어가 아니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냉혈동물’과 ‘온혈동물’이라는 표현은 사실 과학적으로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분류를 사용합니다.

  • 외온성(Ectothermy) — 외부 환경의 온도에 따라 체온이 변하는 동물. 도마뱀, 뱀, 거북이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보통 ‘냉혈’이라고 부르는 동물들입니다.
  • 내온성(Endothermy) — 자기 몸 안에서 열을 만들어내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동물. 포유류와 새가 대표적입니다. 우리가 ‘온혈’이라고 부르는 동물들입니다.
  • 중온성(Mesothermy) — 그 중간. 자체적으로 일정량의 열을 만들지만, 포유류만큼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지는 않는 동물. 참치, 백상아리, 일부 거북이가 여기에 속합니다.

이 분류를 머릿속에 넣어두고,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1970년대, ‘공룡 르네상스’의 시작

로버트 바커, 도마뱀의 이미지를 박살내다

1968년, 예일 대학교의 한 박사과정 학생이 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는 논문을 발표합니다. 그의 이름은 로버트 바커(Robert Bakker). 그는 다음과 같은 도발적인 주장을 펼쳤습니다. “공룡은 도마뱀이 아니라 새와 같은 내온성 동물이었다.”

바커가 든 증거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 몸 구조 — 공룡의 다리는 도마뱀처럼 옆으로 뻗어 있지 않고, 포유류와 새처럼 몸 바로 아래로 곧게 내려와 있습니다. 이는 활발한 움직임을 위한 구조입니다.
  • 속도와 활동성 — 발자국 화석을 분석하면 일부 공룡은 시속 40킬로미터 이상으로 달릴 수 있었습니다. 도마뱀은 절대 낼 수 없는 속도입니다.
  • 포식자와 먹이의 비율 — 화석 기록을 보면 공룡 생태계는 외온성 동물 생태계가 아니라 내온성 동물 생태계와 더 비슷한 비율을 보입니다. 외온성 포식자는 적게 먹어도 되기에 사냥감 대비 포식자 비율이 높지만, 내온성 포식자는 비율이 낮습니다. 공룡 생태계는 후자에 가까웠습니다.
  • 고위도 분포 — 알래스카, 호주, 남극 부근 등 추운 지역에서도 공룡 화석이 발견됩니다. 외온성 동물은 그런 환경에서 살 수 없습니다.

바커의 책 ‘디노사우르 헤레시즈(The Dinosaur Heresies, 1986)’는 출간되자마자 학계와 대중 양쪽에서 엄청난 반응을 일으켰습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공룡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시대가 열립니다. ‘쥬라기공원’ 영화에서 우리가 보게 되는 그 민첩하고 영리한 공룡들의 모습은, 사실 바커의 이론이 대중문화에 스며든 결과물입니다.

1969년 바커의 논문 한 편이 발표되기 전과 후의 공룡 이미지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전까지 공룡은 ‘거대한 도마뱀’이었고, 그 이후 공룡은 ‘거대한 새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전통주의자들의 반격 — ‘너무 크면 어차피 따뜻하다’

물론 바커의 주장이 모두에게 받아들여진 것은 아닙니다. 보수적인 고생물학자들과 생리학자들은 곧 강력한 반론을 제기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거대온성(Gigantothermy)’ 가설입니다.

거대온성 가설

이 가설의 논리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합니다. ‘몸이 크면 체온은 저절로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것입니다. 동물의 표면적은 길이의 제곱에 비례하지만, 부피는 길이의 세제곱에 비례합니다. 즉, 몸이 커질수록 단위 부피당 표면적은 작아지고, 열이 빠져나가는 속도가 느려집니다.

현대의 거대 거북이가 좋은 예입니다. 외온성 동물임에도 불구하고 워낙 몸이 크기 때문에 한 번 햇볕을 쬐어 체온이 오르면 밤새도록 그 체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공룡도 마찬가지로, 굳이 내온성이 아니더라도 거대한 몸집 덕분에 충분히 일정한 체온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이 가설은 한 가지 굉장히 매력적인 ‘부수 효과’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만약 공룡이 거대온성 외온 동물이었다면, 그들이 왜 그렇게 거대해질 수 있었는지가 설명됩니다. 내온성 동물은 같은 체중을 유지하기 위해 외온성 동물의 10배 가까운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만약 공룡이 내온성이었다면, 거대한 용각류(브라키오사우루스, 아르헨티노사우루스 등)는 매일 자기 몸무게에 가까운 식물을 먹어야 했을 것입니다. 도저히 불가능한 양입니다. 그러나 외온성이라면 그 1/10 정도만 먹어도 됩니다.

결정적 증거의 등장 — 뼈가 말하는 이야기

1980년대 후반부터 학계는 결정적인 새로운 도구를 손에 넣었습니다. 바로 골조직학(bone histology)입니다. 공룡의 뼈를 종이처럼 얇게 잘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기법입니다.

나무처럼 나이테가 있는 뼈

외온성 동물인 도마뱀과 거북의 뼈에는 ‘성장정지선(LAGs, Lines of Arrested Growth)’이라는 명확한 나이테가 보입니다. 추운 계절이나 먹이가 부족할 때 성장이 멈추기 때문입니다. 반면 내온성 포유류와 새의 뼈는 거의 일정한 속도로 빽빽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렇다면 공룡의 뼈는 어떨까요.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공룡의 뼈는 도마뱀의 뼈보다는 포유류·새의 뼈에 훨씬 가까웠습니다. 빽빽한 혈관 자국, 빠른 성장 속도, 그리고 무엇보다 ‘연중 거의 멈추지 않는 성장’의 흔적이 발견된 것입니다.

특히 결정적이었던 것은 티라노사우루스의 성장 곡선입니다. 골조직학으로 분석한 결과, 티라노는 12살에서 18살 사이의 6년간 하루에 무려 2킬로그램씩 체중이 늘었습니다. 외온성 동물에게는 절대 불가능한 성장 속도입니다. 어린 티라노는 사실상 ‘급격하게 자라나는 새’와 거의 같은 속도로 성장했습니다.

화학이 밝혀낸 비밀 — 산소 동위원소

2010년대에 들어 학계는 또 하나의 강력한 무기를 손에 넣었습니다. 바로 산소 동위원소 분석입니다. 동물의 이빨이나 뼈 속에 들어 있는 산소 동위원소(O-16과 O-18)의 비율은 그 동물이 살았던 환경의 온도와 체온에 따라 달라집니다.

2011년 캘리포니아 공대(Caltech)의 연구팀은 거대 용각류 공룡의 이빨에 들어 있는 산소 동위원소 비율을 분석해, 그들의 체온이 약 섭씨 36~38도였다는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는 현대 포유류의 체온과 거의 같은 수준입니다. 단순히 거대해서 우연히 그 정도 온도가 유지된 것인지, 아니면 능동적으로 그 체온을 만들어낸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 중이지만, 적어도 공룡이 ‘차가운 피를 가진 도마뱀’이 아니라는 사실은 명확해진 셈입니다.

새와 공룡의 연속성 — 결정타

1990년대 후반부터 중국 랴오닝 지역에서 쏟아져 나온 깃털 공룡 화석들은 또 한 번 학계를 흔들었습니다. 시노사우롭테릭스, 미크로랍토르, 안키오르니스 같은 깃털 공룡들이 발견되면서, 새가 공룡의 한 갈래라는 사실이 결정적으로 확정되었습니다.

현대의 새는 모두 내온성 동물입니다. 그렇다면 새의 직계 조상인 수각류 공룡들 역시 내온성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진화는 비약적으로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디선가 ‘차가운 피’에서 ‘따뜻한 피’로 전환되는 시점이 있어야 하는데, 그 시점이 새가 등장한 순간이 아니라 훨씬 더 이전, 즉 공룡 진화의 초기 단계였다는 시각이 점점 강해지고 있습니다.

현재의 답 — ‘중온성’이라는 새로운 시각

그렇다면 100년의 논쟁 끝에 도달한 학계의 현재 결론은 무엇일까요. 가장 폭넓게 받아들여지는 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공룡은 도마뱀처럼 차갑지도, 포유류처럼 뜨겁지도 않았다. 그들은 그 중간, ‘중온성(mesothermy)’ 동물에 가까웠다.”

2014년 뉴멕시코 대학교 연구팀이 발표한 대규모 분석은 이 시각을 결정적으로 뒷받침했습니다. 연구팀은 현존하는 다양한 동물의 성장 속도와 대사율을 정리한 다음, 공룡 화석의 성장 속도와 비교했습니다. 결과는 공룡이 외온성 동물과 내온성 동물 사이의 정확한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현대의 백상아리, 참치, 일부 거대 거북이가 보이는 ‘중온성’의 특징과 일치했습니다.

이 시각은 그동안의 모든 논쟁을 매우 깔끔하게 정리해줍니다. 공룡은 능동적으로 일정 수준의 열을 만들 수 있었기에 활발히 움직일 수 있었고, 추운 지역에서도 살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완전한 내온성이 아니었기에, 거대한 몸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음식의 양이 포유류만큼 많지 않았고,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거대한 공룡’들이 진화할 수 있었습니다.

마치며 — 진화는 흑백이 아니다

공룡의 체온 논쟁은 단순히 ‘냉혈이냐, 온혈이냐’를 가르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자연을 어떻게 이해해 왔는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19세기의 학자들은 모든 동물을 ‘냉혈’ 아니면 ‘온혈’이라는 두 칸으로 나누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자연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냉혈과 온혈은 둘 사이의 연속적인 스펙트럼이며, 그 안에 무한히 많은 단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공룡은 그 연속체 어딘가에서 자기만의 독특한 자리를 찾은, 진화의 위대한 실험이었습니다.

그들은 도마뱀처럼 굼뜨지도, 포유류처럼 끊임없이 먹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래서 1억 6,000만 년이라는, 포유류가 지구를 지배한 시간보다 훨씬 더 긴 시간 동안 지구의 주인공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이 100년의 논쟁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교훈은 어쩌면 이것일지도 모릅니다. “자연을 두 칸으로 나누려 하지 말 것. 그 사이에는 언제나 우리가 미처 상상하지 못한 다른 답이 숨어 있다.”

다음 글에서는, 그 깃털 공룡 이야기의 핵심을 이루는 또 다른 흥미진진한 주인공, ‘영화 속 거대한 사냥꾼’ 벨로키랍토르의 진짜 모습을 본격적으로 파헤쳐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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