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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공룡 멸종 후 — K-Pg 경계에서 살아남은 생물들

by hakung 2026.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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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0만 년 전 유카탄 반도에 폭 10km짜리 소행성이 충돌했다. 히로시마 핵폭탄 10억 개에 해당하는 에너지가 순식간에 방출됐고, 충돌로 인한 충격파, 쓰나미, 화재, 핵겨울(impact winter)이 지구를 휩쓸었다. 지구상 종의 약 75~80%가 멸종한 K-Pg 대멸종(백악기-팔레오기 경계) 사건이다. 그런데 이 지옥 같은 환경에서 어떤 생물들이 살아남았을까. 생존자들의 이야기는 멸종만큼이나 흥미롭다.

| 멸종 당일의 지구 — 무슨 일이 일어났나

소행성이 유카탄 반도의 얕은 바다에 충돌하면서 즉각적인 효과와 장기적인 효과가 연달아 나타났다.

즉각 효과(수 시간~수 일): 충돌 지점 반경 수천 km의 생물이 열충격파(thermal pulse)로 즉사했다. 상공으로 방출된 파편들이 대기권 재진입 시 열을 발생시켜 광범위한 지역에 산불이 발생했다. 충돌로 생긴 거대 쓰나미가 해안선을 쓸었다.

중기 효과(수 주~수 년): 대기에 퍼진 먼지, 그을음, 황산염 에어로졸이 햇빛을 차단해 지구 기온이 급격히 하락했다. 광합성이 멈추면서 식물이 대량 사망했다. 식물 기반 먹이사슬이 붕괴됐다.

장기 효과(수십~수백 년): 화재로 방출된 이산화탄소와 기온 변화로 인한 기후 교란이 수십 년~수백 년 지속됐다. 일부 추정으로는 평균 기온이 수십 년간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 살아남지 못한 것들 — 멸종 조건의 특징

K-Pg 경계를 넘지 못한 생물들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체온 유지를 위해 외부 에너지(햇빛의 온기, 식물 기반 먹이)에 크게 의존했던 대형 파충류들이 취약했다. 둘째, 대형 몸집은 먹이가 부족한 환경에서 에너지 소비가 너무 컸다. 셋째, 전문화된 먹이에 의존하는 종들은 그 먹이가 사라졌을 때 대안이 없었다. 공룡(비조류 공룡), 익룡, 수장룡, 모사사우루스 등 대형 파충류가 전멸한 것은 이런 복합적 이유 때문이다.

| 생존자 ① 새 — 공룡에서 살아남은 계통

새(조류)는 공룡의 일파다. K-Pg 경계를 넘어 살아남은 공룡 계통이다. 그렇다면 왜 새는 살아남고 다른 공룡은 멸종했을까. 2020년 발표된 연구(Field et al.)는 K-Pg 생존 조류의 특성을 분석했다. 살아남은 조류들은 주로 땅에서 생활하며 씨앗, 죽은 식물, 곤충 등 다양한 먹이를 먹는 일반식자(generalist)였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나무 위에 의존하는 삼림성 조류들은 숲이 사라지면서 함께 멸종했을 것이다. 작은 몸집도 유리했다. 에너지 소비가 적어 먹이가 부족한 환경에서 오래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 생존자 ② 악어 — 변하지 않은 생존 전략

악어는 K-Pg 경계를 넘은 가장 성공적인 대형 파충류다. 현생 악어의 조상들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는 그들의 생물학적 특성으로 설명된다. 악어는 변온동물로 먹이가 없어도 수개월~수년을 생존할 수 있다. 물가에 사는 특성상 육지 환경 변화에 덜 영향을 받는다. 잡식성에 가까워 어류, 동물 사체, 썩은 식물 등 다양한 것을 먹을 수 있다. 이런 특성들이 대멸종의 혹독한 환경을 버티게 했다. 2억 3,000만 년 전부터 살아온 악어 계통이 K-Pg 사건에서도 살아남아 현재 24종이 지구에 살고 있다.

| 생존자 ③ 포유류 — 이후 세상의 주인이 된 집단

K-Pg 직전의 포유류는 주로 소형 야행성 동물로, 곤충이나 씨앗을 먹으며 땅속에 굴을 파고 살았다. 이런 특성들이 생존에 결정적으로 유리했다. 소형 몸집으로 에너지 소비가 적고, 땅속 굴이 외부 온도 변화와 화재로부터 보호해줬다. 다양한 먹이(곤충, 씨앗, 사체 등)를 먹을 수 있어 먹이사슬 붕괴에 적응했다. 공룡이 사라진 후 포유류는 비어있는 생태적 지위(ecological niche)를 빠르게 채우며 다양화됐다. K-Pg 이후 수백만 년 만에 포유류는 크기와 종류 면에서 폭발적으로 다양화해 현재의 4,000여 종으로 진화했다.

| 생존자 ④ 거북과 뱀 — 숨겨진 생존자들

거북은 K-Pg 경계를 잘 넘은 집단이다. 단단한 등껍질, 낮은 신진대사, 잡식성, 수중 생활 능력 등이 생존에 유리했다. 뱀도 이 시기를 넘어 이후 다양화됐다. K-Pg 직후인 팔레오기 초기 화석 기록에서 뱀의 다양성이 급증하는 것이 확인된다. 비교적 소형이고 다양한 환경에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이 주효했다.

| 바다에서는 무슨 일이 — 해양 생물의 생존과 멸종

K-Pg 멸종은 육상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바다에서도 암모나이트(나선형 껍질 두족류) 전체가 멸종했고, 수장룡과 모사사우루스도 사라졌다. 산호초의 절반 이상이 멸종했으며, 플랑크톤의 대량 멸종이 해양 먹이사슬 전체를 붕괴시켰다. 그러나 심해 저서 생물(해저면 생물), 경골어류, 상어류, 오징어류는 비교적 잘 살아남았다. 특히 상어는 K-Pg 경계를 포함해 지구 5대 대멸종을 모두 넘어 현재까지 이어지는 놀라운 생존 능력을 보여준다.

| K-Pg 이후 — 빠른 생태계 회복

2022년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K-Pg 충돌 직후 멕시코만 일대 해양 생태계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회복됐다. 충돌 지점인 칙술루브 분화구 내부에 불과 수만 년 만에 다양한 생물이 다시 살기 시작한 흔적이 발견됐다. 육상에서도 K-Pg 이후 수십만 년 안에 숲이 회복되고 포유류가 다양화하기 시작한 증거들이 여러 지층에서 확인된다. 생명은 상상을 뛰어넘는 회복력을 가지고 있다.

K-Pg 대멸종은 끝이 아니었다. 오히려 새로운 세계의 시작이었다. 공룡이 지배하던 세상이 사라지고, 그 공백을 채운 포유류와 조류가 현재의 지구를 만들었다. 우리 인간도 그 생존자들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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