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는 공룡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알려준다. 그러나 공룡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려주는 것은 발자국이다. 발자국 화석, 즉 생흔화석(trace fossil)은 공룡이 실제로 어떻게 걷고, 뛰고, 무리를 지어 이동했는지를 기록한 살아있는 증거다. 뼈 화석보다 훨씬 많이 발굴되는 발자국 화석은 공룡 생태학의 핵심 데이터 소스다.
| 발자국 화석이란 무엇인가
발자국 화석은 공룡이 부드러운 진흙이나 모래 위를 걸을 때 생긴 흔적이 굳어 암석이 된 것이다. 생물의 몸체가 화석화된 체화석(body fossil)과 달리, 행동의 흔적이 보존된 생흔화석(ichnofossil)에 속한다. 발자국 외에도 둥지 흔적, 먹이를 먹은 흔적, 몸을 끌거나 쉰 흔적 등도 생흔화석에 포함된다.
발자국 화석이 만들어지려면 몇 가지 조건이 맞아야 한다. 퇴적물이 너무 딱딱하면 흔적이 남지 않고, 너무 물컹하면 형태가 유지되지 않는다. 흔적이 남은 뒤 건조되어 단단해지고, 그 위에 다른 퇴적물이 쌓여 보호받아야 한다. 이런 조건이 맞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발자국 화석은 귀한 편이지만, 동시에 특정 환경(강가, 호숫가, 삼각주)에서는 수천 개가 한꺼번에 발굴되기도 한다.
| 발자국 화석으로 알 수 있는 것들
① 이동 속도 계산
발자국 사이 거리(보폭)와 발자국 크기(다리 길이 추정)를 이용하면 공룡의 이동 속도를 계산할 수 있다. 영국의 고생물학자 로버트 맥닐 알렉산더(Robert McNeill Alexander)가 1976년 개발한 공식은 다리 길이와 보폭으로 보행 속도를 추정한다. 이 공식에 따르면 대부분의 공룡 발자국 기록은 시속 3~10km의 보행 속도를 나타내며, 이는 성인 사람의 빠른 걸음과 유사하다. 단, 달리는 발자국(질주 궤적)은 보폭이 급격히 길어지고 발자국이 얕아지는 특징이 있어 구별할 수 있다.
② 무리 행동 확인
여러 개체의 발자국이 같은 방향으로 동시에 찍힌 패턴은 공룡이 무리를 지어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텍사스 팔룩시(Paluxy) 강 하상에서 발견된 사우로포드 발자국 군집은 약 20여 개체가 같은 방향으로 이동한 흔적을 보여준다. 더 흥미로운 것은 어린 개체의 발자국이 무리의 중앙부에, 대형 성체의 발자국이 외곽에 위치한 패턴이다. 이는 어린 개체를 성체들이 외곽에서 보호하는 포진 형태로 이동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③ 사냥 행동 재구성
팔룩시 강에서는 더 드라마틱한 발자국도 발견됐다. 대형 수각류(카르노타우루스류 추정)의 발자국이 사우로포드의 발자국과 함께 나타나는데, 수각류의 발자국이 사우로포드의 발자국 궤적을 향해 접근하다가 갑자기 없어지는 패턴이 발견됐다. 한동안 이것이 사냥 장면의 화석 기록으로 해석됐으나, 이후 연구에서 두 발자국 열이 실제로 같은 시간대에 만들어진 것인지 불확실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발자국 화석은 해석에 주의가 필요하다.
④ 자세와 보행 패턴
발자국의 형태와 배치는 공룡이 걸을 때의 자세를 알려준다. 예를 들어 꼬리를 끌었다면 꼬리 흔적이 발자국 사이에 선으로 남아야 한다. 대부분의 공룡 발자국 기록에는 꼬리 흔적이 없어, 수각류와 사우로포드 모두 꼬리를 땅에서 들고 걸었음을 확인해준다. 이것은 오래된 공룡 그림에서 꼬리를 질질 끌고 다니는 모습이 잘못됐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다.
| 세계의 주요 공룡 발자국 화석 산지
미국 텍사스 팔룩시 강(Glen Rose Formation): 백악기 사우로포드와 수각류 발자국이 강바닥에 대규모로 노출된 세계 최대급 산지 중 하나. 현재 공원으로 보호 중.
볼리비아 수크레(Cretaceous Park): 석회암 절벽 면에 수직으로 노출된 발자국 화석. 1만 개 이상의 발자국이 약 68종의 다양한 공룡을 기록하고 있다.
호주 브룸(Broome Sandstone): 해안선을 따라 노출된 쥐라기 말기 발자국. 브라키오사우루스류, 스테고사우루스류, 수각류 등 다양한 발자국이 조간대에 보존되어 있다.
한국 경남 고성(중국리 層): 수각류, 조각류, 사우로포드 발자국이 대규모로 발굴된 동아시아 최대급 산지. 상세한 내용은 아래 별도 항목 참조.
| 발자국 화석 해석의 한계
발자국 화석은 대단히 유용하지만 해석할 때 주의해야 할 함정도 있다. 첫째, 발자국을 남긴 공룡의 종을 정확히 특정하기 어렵다. 발자국만 있고 뼈가 없으면 어떤 종인지 알 수 없어, 발자국 화석에는 별도의 학명(예: 에우브론테스, Eubrontes)이 붙는다. 둘째, 같은 종이라도 발자국 모양이 매우 다를 수 있다. 나이, 보행 속도, 기질(진흙의 단단함)에 따라 같은 공룡의 발자국도 전혀 다른 모양이 될 수 있다. 셋째, 퇴적물이 깊이 눌렸을 때는 실제 발자국보다 훨씬 큰 흔적이 남아 크기를 과대평가하게 만들 수 있다.
| 최신 기술 — 3D 스캔과 지층 분석
최근에는 발자국 화석을 3D 레이저 스캐닝으로 정밀하게 기록하고, 깊이와 압력 분포를 분석해 공룡의 체중과 이동 방식을 더 정확하게 추정하는 연구가 활발하다. 2020년 이후에는 드론 사진측량(photogrammetry)으로 넓은 지역의 발자국 분포를 한꺼번에 기록하는 방법도 표준화되고 있다. 발자국 화석 연구는 뼈 화석 연구만큼 정밀해지고 있다.
공룡 발자국은 단순한 흔적이 아니다. 수천만 년 전, 지금 우리가 서 있는 땅 위를 거닐었던 생명체의 살아있는 발걸음이다. 그 발자국 하나하나가 공룡의 일상을, 그리고 그들이 살았던 세계를 조금씩 복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