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일본어를 독학으로 시작했어요.
중학교 2학년 때 우연히 일본 애니메이션에 빠지면서였는데, 처음엔 그냥 취미였어요. 자막 없이 보고 싶다는 단순한 이유로 히라가나부터 외우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JLPT N3을 따고 있더라고요. 그때부터였어요. "나 일본 가고 싶다"가 "나 일본에서 대학 다니고 싶다"로 바뀐 게.
목표는 처음부터 와세다(早稲田)였어요.
일본 사립대 양대산맥이라고 하면 와세다랑 게이오(慶應)잖아요. 근데 저는 왠지 게이오보다 와세다가 더 끌렸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와세다는 역사적으로 재야 정신, 독립 기개 같은 이미지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권력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선다는 느낌? 애니메이션 덕후 출신 독학러인 저한테 묘하게 어울리는 것 같았어요 😄
처음 도쿄에 발을 디뎠을 때
와세다 합격 전에 먼저 어학연수로 도쿄에 갔어요. 고3 겨울방학이었는데, 혼자 비행기 타고 나리타 공항에 내렸을 때의 그 기분이 아직도 생생해요.
공항 자체가 너무 조용해서 당황했어요. 한국 인천공항이랑 분위기가 달랐거든요. 사람들이 전화 통화도 작게 하고, 줄도 얌전하게 서고, 아무도 큰 소리를 안 내는 거예요. 처음엔 그게 좀 어색했는데, 며칠 지나니까 이게 주는 안정감이 있더라고요.
도쿄는 크고 조용해요. 그리고 무서울 정도로 편리해요.
지하철 배차 간격이 2~3분이에요. 심야에도 다녀요. 편의점은 24시간이고, 거기서 공과금도 내고 택배도 보내고 뭐든 다 할 수 있어요. 저는 처음 한 달 동안 "이 나라 진짜 뭐야..." 하면서 매일 놀랐어요.
와세다 캠퍼스를 처음 봤을 때
어학연수 숙소가 신주쿠 쪽이었는데, 와세다 캠퍼스까지 걸어서 갈 수 있었어요.
어느 날 오후에 혼자 슬쩍 가봤어요. 정식으로 방문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구경이나 하자 싶어서요. 오쿠마 강당 앞에 섰을 때, 솔직히 심장이 두근거렸어요. 그 붉은 건물이 사진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웅장했거든요.
근처 벤치에 앉아서 한 시간 정도 그냥 사람들 보고 있었어요.
오가는 학생들이 너무 자연스러웠어요. 까페에서 나오면서 스마트폰 보고, 친구랑 웃으면서 걷고, 혼자 이어폰 꽂고 계단 내려오고. 그냥 평범한 대학생들인데, 이 캠퍼스 안에서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보였어요.
"저 안에 내가 있으면 어떨까."
그 생각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질 않았어요.
일본 대학 입시, 생각보다 길이 여러 개였어요
막연히 "일본 유학 = 일본어 잘해야 함"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찾아보니 입시 루트가 꽤 다양했어요.
와세다 기준으로 크게 세 가지가 있어요.
첫 번째는 EJU(일본유학시험) 경로예요. 일본어 능력과 기초 학력을 평가하는 시험인데, 와세다는 여기에 자체 시험을 추가로 보는 경우가 많아요. JLPT N1 정도는 기본으로 갖추고 있어야 해요.
두 번째는 AO 입시(자기추천 전형) 예요. 학업 능력보다 개인의 경험, 비전, 열정을 보는 전형인데, 준비 과정이 굉장히 까다롭지만 어학 조건이 상대적으로 유연할 수 있어요. 영어로 진행되는 영어 트랙 프로그램도 있고요.
세 번째는 지정교 추천 전형이에요. 와세다와 협정을 맺은 일부 한국 고등학교에서 추천을 받아 지원하는 방식인데, 해당 학교 재학생이 아니면 해당이 안 돼요.
저는 일반 EJU 경로로 준비했어요. JLPT는 N2를 가지고 있었고, 어학연수 후에 N1을 목표로 했죠.
현지에서 만난 선배한테 들은 솔직한 이야기
어학연수 기간에 와세다 재학 중인 한국인 선배를 우연히 만났어요. 언어 교환 앱으로 연결됐는데, 같은 한국인이라 금방 친해졌어요.
선배한테 솔직하게 물어봤어요.
"와세다, 진짜 어때요?"
선배가 커피 한 모금 마시고 이렇게 말했어요.
"좋아요. 근데 생각보다 외로울 수 있어요."
의외의 대답이었어요. 이유를 물었더니, 일본 학생들이 기본적으로 그룹이 이미 형성되어 있고 외국인이 그 안에 자연스럽게 끼기가 쉽지 않다고 했어요. 언어가 된다고 문화적인 코드까지 다 맞는 건 아니니까요.
"근데 그게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까 공부에 더 집중하게 됐거든요. 그리고 진짜 가까워지면 일본 친구들이 엄청 따뜻해요. 겉이 좀 두꺼울 뿐이지."
그 말이 오래 기억에 남았어요.
학비와 생활비 현실
일본 유학을 꿈꾸는 분들이 제일 궁금해하는 부분이 이거잖아요.
와세다 학비는 학부 기준 연간 약 130만~150만 엔 정도예요. 한화로 약 1,200만~1,400만 원 수준이에요. 미국 사립대에 비하면 훨씬 저렴하죠.
생활비는 도쿄 기준으로 월 10만~15만 엔 정도 잡으면 돼요. 집세가 제일 큰데, 학생 기숙사나 학교 인근 원룸은 월 5만~7만 엔 선에서 구할 수 있어요. 밥은 편의점이나 학교 식당 이용하면 하루 1,000엔 내외로도 충분해요. 진짜로요.
장학금 제도도 생각보다 다양해요. 일본 정부 초청 장학금(MEXT)은 학비 전액 면제에 생활비까지 지원되는데, 경쟁이 치열해요. 와세다 자체 장학금도 있고, 민간 장학 재단도 여러 개예요. 일본은 유독 민간 장학금이 활성화되어 있어서, 성실하게 찾으면 의외로 기회가 많아요.
지금 생각하면
저는 결국 와세다에 진학하지 못했어요.
EJU 점수가 아깝게 부족했고, 재수험을 고민하다가 개인 사정으로 포기했어요. 지금은 한국에서 직장 다니면서 일본어 실력은 계속 유지하고 있고, 언젠가 대학원이나 다른 방식으로 다시 도전해볼 생각이에요.
실패한 사람이 와세다 얘기 하는 게 우습게 보일 수도 있어요. 근데 저는 그 준비 과정이 전혀 아깝지 않아요. 일본어를 진짜 제대로 배웠고, 도쿄라는 도시를 사랑하게 됐고, 혼자 무언가를 목표로 끝까지 달려보는 경험을 했으니까요.
일본 유학을 꿈꾸는 분들, 포기하지 마세요.
와세다가 아니어도 괜찮아요. 일본에는 좋은 대학이 많고, 그 나라에서 보내는 시간 자체가 여러분을 성장시켜줄 거예요. 오쿠마 강당 앞 벤치에서 한 시간 동안 멍하니 앉아 있던 그날의 저처럼, 여러분도 그 설레는 순간을 꼭 경험해 보셨으면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