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하면 미국 몬태나, 중국 랴오닝,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를 떠올린다. 그러나 한국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공룡 화석 산지다. 경상남도 고성은 세계 3대 공룡 발자국 화석 산지로 공식 인정받았고, 전라남도 해남에서는 세계 최초로 익룡·공룡·물갈퀴새 발자국이 한 지층에서 함께 발견됐다. 우리 발밑의 땅에 새겨진 공룡의 흔적을 들여다보자.
| 경상층군 — 한국 공룡 화석의 보물창고
한국의 공룡 화석은 대부분 경상층군(慶尙層群)에서 발굴된다. 경상층군은 약 1억 3,000만~7,000만 년 전 백악기에 한반도 남동부(현재의 경상남북도, 전라도 일부)에 형성된 두꺼운 퇴적암층이다. 당시 이 지역은 건기와 우기가 반복되는 광대한 분지 지형이었으며, 호수, 강, 삼각주가 발달해 공룡들의 주요 서식지이자 화석화에 유리한 환경이었다.
경상층군은 크게 세 지층으로 구분된다. 신동층군(가장 오래된 층, 약 1억 3,000만~1억 2,000만 년 전), 하양층군(약 1억 1,000만~9,500만 년 전), 유천층군(화산암 우세, 약 9,500만~7,000만 년 전)이다. 공룡 발자국과 뼈 화석은 주로 하양층군에서 집중적으로 발굴된다.
| 고성 공룡 발자국 화석 — 세계 3대 산지
경남 고성군 하이면·덕명리 일대 해안에는 약 1억 년 전 백악기 공룡들의 발자국이 약 10km에 걸쳐 펼쳐져 있다. 1982년 처음 발견된 이후 현재까지 약 5,000개 이상의 발자국이 확인됐다.
고성에서 발견된 발자국의 종류는 놀랍도록 다양하다.
- 수각류(육식 공룡) 발자국: 세 개의 발가락 흔적. 다양한 크기로 소형에서 대형까지.
- 조각류(초식 공룡) 발자국: 세 개의 넓은 발가락과 뭉툭한 발굽 흔적.
- 사우로포드(목 긴 공룡) 발자국: 거대한 타원형 앞발과 둥근 뒷발 흔적. 크기 최대 약 80cm.
고성 발자국 화석지가 세계적으로 특별한 이유는 발자국의 다양성과 수량뿐만 아니라 보존 상태가 매우 우수하기 때문이다. 발가락 끝의 발톱 흔적, 피부 질감까지 남아있는 표본들이 포함되어 있다. 현재 천연기념물 제41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위한 절차가 진행 중이다.
| 해남 우항리 — 세계 최초의 기록들
전남 해남군 황산면 우항리 해안은 공룡 화석 역사에 여러 세계 최초 기록을 가진 장소다. 1996년 처음 발굴이 시작된 이후 계속해서 새로운 발견이 이어지고 있다.
세계 최대 익룡 발자국: 우항리에서는 익룡(프테로사우루스류)의 발자국이 발견됐는데, 앞발 발자국 길이 약 35cm로 당시 세계 최대 익룡 발자국 기록이었다. 추정 날개폭 약 10~12m의 대형 익룡이 남긴 것으로 분석됐다.
물새형 발자국과 공룡·익룡의 공존: 우항리에서는 같은 지층에서 익룡 발자국, 조각류 공룡 발자국, 그리고 물갈퀴가 달린 새 모양의 발자국이 함께 발견됐다. 이것은 약 8,500만 년 전 이 지역에 공룡, 익룡, 조류가 공존했음을 보여주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기록이다. 현재 천연기념물 제394호로 지정되어 있다.
| 경북 의성 — 공룡 뼈 화석의 산지
발자국이 아닌 실제 뼈 화석으로는 경북 의성군이 중요한 산지다. 2019년까지 의성에서는 수각류, 조각류, 사우로포드 공룡의 뼈 화석이 여러 점 발굴됐다. 특히 2019년 발표된 코리아케라톱스(Koreaceratops hwaseongensis)는 경기도 화성에서 발굴된 뿔 달린 공룡(각룡류)으로, 한국에서 명명된 최초의 각룡류다. 몸길이 약 2m의 소형 각룡류로 꼬리 척추뼈의 형태가 수영에 유리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 반수생 생활을 했을 것이라는 흥미로운 주장이 제기됐다(단, 이 주장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논쟁 중이다).
| 전남 화순 — 공룡알 화석
전남 화순군에서는 2003년 대규모 공룡알 화석이 발굴됐다. 현재 천연기념물 제487호로 지정된 화순 공룡알 화석지에서는 사우로포드(목 긴 공룡)가 낳은 것으로 추정되는 알 화석이 집단으로 발견됐다. 알의 크기와 배열 패턴이 둥지 행동을 시사하는 매우 중요한 생태학적 자료다.
| 한반도 공룡들은 어디서 왔을까
백악기 당시 한반도는 현재와 지리적 위치가 달랐고, 아시아 대륙의 동쪽 가장자리에 위치한 지형이었다. 중국 북동부, 몽골, 현재의 한반도는 육지로 연결되어 있어 공룡들이 이동했을 것이다. 한국에서 발굴되는 수각류와 조각류의 형태는 중국 후기 백악기 공룡과 유사성이 높아, 이 지역 공룡들이 아시아 대륙 공룡과 같은 계통이거나 자주 이동했음을 시사한다. 반면 일부 사우로포드 발자국은 동시기 중국 표본과 미묘한 차이를 보여 일부 종은 한반도에서 독자 진화했을 가능성도 있다.
| 최근 연구 동향 — 2020년대의 새 발견
2020년대 들어 한국 공룡 연구는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2022년 경남 진주 지층에서 새로운 형태의 소형 수각류 발자국이 집단으로 발굴됐다. 2023년에는 고성 발자국 화석지 해저 조사에서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구역에서 수십 개의 새로운 발자국이 확인됐다. 문화재청과 국립문화재연구원이 경상층군 체계적 조사 사업을 지속하고 있어, 앞으로 더 많은 새로운 발견이 기대된다.
다음에 남해나 고성 해안을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발밑의 바위를 유심히 살펴보자. 1억 년 전 거대한 공룡이 남긴 발자국이 바로 그 돌 위에 새겨져 있을 수도 있다. 공룡 화석 산지는 지구 반대편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이 땅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