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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공룡은 얼마나 똑똑했을까 — 지능 논쟁과 최신 연구

by hakung 2026.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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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하면 흔히 덩치 크고 둔한 짐승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어린 시절 공룡 도감을 펼쳐보면 아무래도 시선이 먼저 가는 건 이빨의 길이나 체중 수치였고, 뇌 용량 같은 항목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런데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제법 복잡해진다. 공룡의 지능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그리고 과연 그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영리했을 가능성은 없는가 — 이 질문을 두고 고생물학자들 사이에서 수십 년째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사실 나는 처음 트로오돈이라는 공룡의 이름을 접했을 때, 그냥 작은 육식 공룡 중 하나겠거니 싶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녀석이 공룡 지능 논의에서 거의 매번 빠짐없이 등장하는 핵심 인물(?)이었다. 오늘은 그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최신 연구까지 한 번 죽 따라가 보자.

이 글에서 다루는 내용
  • EQ(뇌화지수)란 무엇인가
  • 트로오돈 — 백악기의 가장 영리한 공룡
  • T. rex의 뇌 구조와 후각 중심 발달
  • 벨로키랍토르의 무리 사냥 가능성과 그 반박
  • 파충류 지능에 대한 오해들
  • 2023년 뉴런 수 연구와 그 논란
  • 새를 통해 유추하는 공룡 지능

지능을 숫자로 나타낼 수 있을까 — EQ 뇌화지수

지능을 정량화하려는 시도는 꽤 오래됐다. 단순히 뇌의 절대적인 크기만 보면 말이 안 되는 결론이 나온다. 코끼리의 뇌는 인간보다 훨씬 무겁지만, 그렇다고 코끼리가 인간보다 영리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신경생물학자들이 고안한 개념이 바로 EQ, 즉 뇌화지수(Encephalization Quotient)다.

EQ는 같은 체중의 동물이 평균적으로 가질 것으로 예측되는 뇌 크기 대비, 실제 뇌 크기가 얼마나 큰지를 나타내는 비율이다. 인간의 EQ는 대략 7~8 수준으로 매우 높다. 침팬지는 2~3, 돌고래는 4~5 정도다. 대부분의 파충류는 1 미만이고, 공룡들도 일반적으로 이 범주에 들어간다.

하지만 EQ에도 한계는 있다. 뇌의 크기가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크기의 뇌라도 뉴런의 밀도나 연결 방식, 특정 영역의 발달 정도에 따라 인지 능력은 전혀 다를 수 있다. 그래서 EQ는 일종의 출발점이라고 보는 게 맞다 — 공룡들이 얼마나 영리했는지를 가늠하는 첫 번째 단서 정도로.

트로오돈 — 백악기에 가장 가까이 간 공룡

작은 몸, 큰 뇌

트로오돈(Troodon formosus)은 백악기 후기 북아메리카에 살았던 소형 수각류 공룡이다. 몸길이는 약 2미터, 체중은 50킬로그램 안팎으로 그리 크지 않다. 그런데 이 동물의 EQ는 다른 공룡들과 비교했을 때 눈에 띄게 높다. 체중 대비 뇌 크기 비율이 현생 조류와 비슷한 수준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트로오돈의 두개골 화석을 보면 눈구멍이 비정상적으로 크다. 눈 자체가 컸다는 뜻인데, 이는 시각 처리에 관여하는 뇌 영역이 상당히 발달했음을 시사한다. 또한 발톱 구조상 도구적 사용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물론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트로오돈이 공룡 중 가장 높은 인지 잠재력을 지녔을 것이라는 견해는 지금도 많은 고생물학자들이 공유한다.

1980년대에 캐나다의 고생물학자 데일 러셀(Dale Russell)은 흥미로운 사고 실험을 했다. 만약 소행성 충돌이 없었다면 트로오돈이 계속 진화해 결국 인간처럼 직립하고 지능을 가진 존재가 됐을 것이라는 이른바 '공룡인간(Dinosauroid)' 가설이다. 지금은 대부분 허구적 상상에 가깝다고 여기지만, 그 상상력의 씨앗을 심어준 것이 바로 트로오돈이었다.

T. rex는 멍청하지 않았다 — 후각의 왕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는 공룡 중에서 가장 유명하지만, 지능 면에서는 종종 저평가를 받아왔다. 특히 팔이 짧고 몸이 거대하다 보니 어쩐지 둔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후각 뇌의 놀라운 발달

T. rex의 두개골 내부를 CT 스캔으로 분석한 연구들에 따르면, 이 동물의 뇌에서 후구(olfactory bulb), 즉 후각을 담당하는 영역이 매우 크게 발달해 있다. 현생 악어류보다도 훨씬 크고, 심지어 일부 포유류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정도다.

이게 단순히 냄새를 잘 맡는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후각 정보를 처리한다는 것은 환경에서 복잡한 신호를 읽고 해석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먹잇감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고, 다른 개체의 상태를 파악하고, 영역을 인식하는 데 고도의 신경 처리가 필요하다. T. rex가 후각을 중심으로 상당히 정교한 인지 작용을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최근 연구에서는 T. rex가 단순한 단독 사냥꾼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사회적 행동을 했을 수 있다는 증거도 나오고 있다. 캐나다 앨버타에서 발견된 복수의 T. rex 발자국 화석이 같은 방향, 비슷한 보폭으로 찍혀 있었다는 사례가 그 근거 중 하나다. 완전히 입증된 건 아니지만, 적어도 이 동물이 단순히 혼자 돌아다니기만 했던 건 아닐 수 있다는 시사점을 준다.

벨로키랍토르의 무리 사냥 — 사실인가 신화인가

《쥬라기 공원》 이후 벨로키랍토르는 무리를 지어 전략적으로 사냥하는 영리한 포식자의 이미지로 굳어졌다. 영화 속에서 문 손잡이를 돌리고, 팀워크로 먹잇감을 몰아가는 모습은 정말 강렬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어떨까.

무리 사냥 가능성을 지지하는 논거

드로마이오사우루스류(벨로키랍토르가 속하는 과)의 발자국 화석 중 여러 개체가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이는 사례들이 보고된 적 있다. 유타 주에서 발견된 화석 기록이 그 대표적인 예인데, 복수의 드로마이오사우루스류가 함께 한 지역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이를 근거로 어느 정도의 집단 행동이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러나 반박도 만만치 않다

문제는 현생 조류 가운데 벨로키랍토르와 가장 가까운 친척들 — 매, 수리 같은 맹금류 — 이 대부분 단독 사냥을 한다는 점이다. 무리 사냥은 포유류 중에서도 늑대나 사자처럼 특정 그룹에서만 나타나는 고도로 특화된 행동이다. 단순히 같은 장소에서 여러 개체가 죽었다고 해서 협력 사냥의 증거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것이 반박론의 핵심이다.

2021년 《PLOS ONE》에 실린 연구에서는 드로마이오사우루스류의 뇌 구조와 행동 범위를 분석한 결과, 집단적 사회 행동보다는 기회주의적 단독 포식에 더 가까웠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영화가 만들어낸 이미지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새삼 실감하게 되는 대목이다.

파충류는 멍청하다? — 오해와 진실

공룡의 지능을 낮게 보는 데에는 뿌리 깊은 편견이 하나 있다. 바로 "파충류는 원래 멍청하다"는 고정관념이다. 그런데 이게 꽤 잘못된 인식이다.

까마귀와 문어가 놀라운 인지 능력을 가졌다는 건 이제 잘 알려진 사실이다. 까마귀는 도구를 사용하고 미래를 계획하며 타인의 시선을 인식한다. 문어는 연체동물임에도 불구하고 학습과 문제 해결 능력에서 척추동물에 필적하는 성과를 보인다. 이들을 기준으로 공룡을 평가하면 공룡이 훨씬 뒤처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생 파충류를 실제로 실험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왕도마뱀(monitor lizard)은 공간 기억 과제에서 개나 고양이와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 성과를 낸다. 악어는 새끼를 적극적으로 돌보는 복잡한 부모 행동을 보인다. 심지어 일부 도마뱀은 다른 개체의 행동을 관찰하고 모방하는 사회적 학습 능력까지 보여준다.

파충류의 뇌가 포유류보다 단순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게 곧 인지 능력의 빈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뇌 구조가 달라도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공룡을 현생 파충류와 같은 수준으로 봐야 할 이유도 없다.

2023년 충격적인 연구 — 공룡의 뉴런 수는 영장류 수준?

2023년, 신경생물학자 수자나 에르쿨라노-우젤(Suzana Herculano-Houzel)이 발표한 논문은 고생물학계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 그녀는 공룡의 뇌 화석과 근연종 분석을 토대로, T. rex를 비롯한 대형 수각류 공룡들의 대뇌 피질 뉴런 수가 원숭이와 비슷한 수준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주장의 핵심

에르쿨라노-우젤의 논리는 이렇다. 공룡의 가장 가까운 현생 친척은 조류다. 조류는 작은 뇌에 포유류보다 훨씬 높은 밀도로 뉴런이 들어차 있다. 이 뉴런 밀도 패턴을 공룡에 적용하면, 단순히 뇌 크기만 봤을 때보다 훨씬 많은 뉴런이 있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T. rex의 경우 대뇌 피질에 약 10억 개 이상의 뉴런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고, 이는 원숭이에 필적한다는 주장이었다.

반박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이 논문은 발표 직후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 제기는 방법론에 관한 것이다. 조류의 뉴런 밀도를 공룡에 그대로 외삽하는 것 자체가 지나치게 단순한 추론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조류는 수억 년의 독립적인 진화 과정을 거쳐 고밀도 뉴런 구조를 갖게 됐는데, 이를 공룡에게 그대로 적용하는 건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영국의 고생물학자 다렌 나이시(Darren Naish)를 포함한 여러 연구자들이 같은 해 반박 논문을 발표하며, 공룡의 뇌 구조는 현생 조류보다는 악어류에 더 가까웠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악어류의 뉴런 밀도를 기준으로 하면 T. rex의 뇌는 그리 특별하지 않다는 결론이 나온다.

결국 이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화석으로는 뇌의 신경 조직 자체가 보존되지 않기 때문에, 공룡의 뉴런 수를 직접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현생 동물을 비교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결론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게 이 분야의 근본적인 어려움이다.

새를 통해 공룡을 보다 — 조류는 살아있는 단서

공룡 지능 연구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접근법 중 하나는 역설적이게도 현재를 보는 것이다. 조류는 수각류 공룡의 직접적인 후손이다. 깃털 달린 공룡들이 진화해 오늘날의 새가 됐다는 것은 이제 고생물학의 기본 상식이다.

조류의 인지 능력은 연구가 거듭될수록 계속 놀라움을 안겨주고 있다. 앞서 언급한 까마귀 외에도, 앵무새는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수 개념을 파악하는 능력을 보인다. 제비꽃새는 먹이를 숨긴 장소를 수백 곳이나 기억한다. 이 모든 능력이 인간보다 훨씬 작은 뇌에서 나온다.

만약 공룡이 비슷한 잠재력을 가졌다면

물론 현생 조류의 높은 인지 능력이 공룡에게 그대로 있었다고 말하긴 어렵다. 진화는 직선이 아니라서, 조류가 지금의 지능을 갖게 된 건 공룡 이후의 기나긴 시간 동안 이루어진 일이다. 그러나 공룡 — 특히 수각류 — 이 단순히 파충류적 본능에만 의존했다는 가정도 틀렸을 가능성이 높다.

트로오돈을 비롯한 소형 수각류들은 눈이 크고 뇌 비율이 높았으며, 빠른 반응이 필요한 환경에 살았다. 사회적 행동의 흔적도 일부 남아 있다. 이들이 조류의 원형적인 인지 능력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었다고 추정하는 것이 완전히 무리한 일은 아니다.

"새는 단지 살아남은 공룡이 아니다. 새는 공룡이 어떤 존재였는지를 우리에게 지금도 보여주고 있다."
— 고생물학자 마크 노렐(Mark Norell), 미국 자연사박물관

결국 지능이란 무엇인가 — 뇌 크기를 넘어서

이 글을 쓰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지능을 정의하는 게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흔히 뇌가 크면 똑똑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게 전부가 아니다.

뇌의 크기, 뉴런의 수, 뇌의 구조와 연결성, 어떤 환경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가 — 이 모든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문어는 뇌가 분산되어 있고, 까마귀는 뇌가 작지만 고밀도다. 인간은 대뇌 피질이 특별히 발달했다. 무엇을 기준으로 지능을 서열화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공룡도 마찬가지다. T. rex는 후각 처리 능력에서 탁월했고, 트로오돈은 시각 정보 처리가 뛰어났을 것이다. 벨로키랍토르는 빠른 반사 신경과 공간 지각에 특화됐을 수 있다. 이들 각각이 자신의 생태적 지위에서 요구되는 인지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을 것이다.

단순히 "공룡은 멍청했다"거나 반대로 "원숭이만큼 똑똑했다"는 식의 단순화는, 수억 년에 걸쳐 다양하게 분화한 생물들의 복잡성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살아남았다. 그게 멍청한 거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고생물학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공룡 지능에 대한 새로운 단서를 찾고 있다. CT 스캔 기술이 발전하고, 뇌 신경 해부학 연구가 깊어지고, 현생 조류에 대한 인지 실험이 쌓여가면서 우리가 공룡을 이해하는 방식도 계속 바뀌고 있다. 어쩌면 몇 년 후에는 지금과는 또 다른 그림이 나올지 모른다. 그게 이 분야가 여전히 흥미로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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