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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공룡 멸종의 진짜 원인 — 소행성 충돌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by hakung 2026.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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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핵심 요약

6600만 년 전 소행성이 지구를 강타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공룡 멸종의 유일한 원인이었을까? 최근 수십 년간의 연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화산, 기후, 해수면, 그리고 이미 흔들리고 있던 생태계 — 여러 요인이 겹쳐 만들어낸 복합적인 재앙이었다.

공룡이 왜 멸종했는지를 처음 배울 때, 대부분의 사람은 소행성 충돌이라는 답을 떠올린다. 학교 교과서에도 그렇게 나오고, 다큐멘터리에서도 극적인 충돌 장면이 단골로 등장한다. 그러다 보니 공룡의 멸종은 마치 하나의 사건, 하나의 날, 한 방의 충격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과학의 세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지난 수십 년간 축적된 연구들은 이 '단일 원인론'에 조금씩, 그러나 꽤나 집요하게 의문을 제기해 왔다.

이 글은 그 의문들을 따라가 보려 한다. 소행성 충돌을 부정하려는 게 아니다. 그것은 분명히 있었고, 분명히 결정적이었다. 다만 그것이 전부였냐고 묻는다면 — 아마도 아닐 것이다.

K-Pg 경계, 그 선명한 흔적

지질학적으로 공룡의 멸종은 K-Pg 경계라는 이름으로 기록된다. K는 백악기(Cretaceous)의 독일어 표기에서 온 것이고, Pg는 팔레오기(Paleogene)를 뜻한다. 이 두 지층 사이의 경계, 약 6600만 년 전에 해당하는 그 얇은 선에서 세상이 바뀐다.

이 경계층을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분석해 소행성 충돌 가설을 제시한 것은 루이스 알바레스(Luis Alvarez)와 그의 아들 월터 알바레스(Walter Alvarez)였다. 1980년에 발표된 그들의 논문은 전 세계 K-Pg 경계층에서 이리듐(iridium)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농도로 발견된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이리듐은 지구 표면에서는 매우 희귀한 원소지만, 소행성에는 상대적으로 풍부하다. 이 발견은 당시 과학계를 뒤집어 놓았다.

이후 1991년, 멕시코 유카탄 반도 해안에서 칙술루브(Chicxulub) 충돌구가 확인되면서 가설은 거의 정설로 굳어졌다. 지름 약 180킬로미터에 달하는 이 거대한 충돌구는 지름 10킬로미터 안팎의 소행성이 만들어낸 흔적이다. 충돌 당시의 에너지는 핵폭탄 수십억 개에 맞먹는 수준이었다고 추정된다.

충돌 직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이제 꽤 상세하게 재구성되어 있다. 초기의 화구와 열파, 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대기 중으로 솟아오른 먼지와 황산염 입자들이 햇빛을 차단하면서 지구는 급격한 냉각에 접어들었다. 이른바 '충돌의 겨울(impact winter)'이다. 광합성이 줄어들고, 먹이사슬의 아래층이 무너지면서 그 위에 있던 거대한 동물들은 버틸 수 없게 됐다.

그런데 데칸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소행성 가설이 자리를 잡아갈 무렵, 과학자들은 다른 불편한 사실을 마주하게 됐다. 바로 데칸 트랩(Deccan Traps)이다.

데칸 트랩은 현재의 인도 서부, 데칸 고원 일대에 펼쳐진 거대한 현무암 지대다. 무려 50만 제곱킬로미터에 가까운 면적, 두께가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용암층이 쌓여 있다. 이 지층이 만들어진 시기가 공교롭게도 K-Pg 경계 전후, 즉 약 6600만 년 전을 중심으로 한 수백만 년에 걸친 시기와 겹친다.

이 정도 규모의 화산 활동이 대기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다. 이산화탄소와 이산화황이 대량으로 분출되면서 한편으로는 온난화를, 다른 한편으로는 산성비와 냉각 효과를 교대로 일으킨다. 생태계 입장에서는 불규칙하고 예측 불가능한 기후 교란이 장기간 계속되는 셈이다. 이것이 공룡에게 스트레스를 줬을 거라는 것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일부 연구에서 데칸 트랩의 화산 활동이 칙술루브 충돌 이후에 오히려 더 격렬해졌다는 증거가 나왔다는 점이다. 충돌로 인한 지진파가 지구 반대편의 마그마 활동을 자극했다는 가설도 있다. 소행성과 화산이 단순히 동시에 일어난 별개의 사건이 아니라, 서로 연결된 재앙이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게르타 켈러의 반란

소행성 단일 원인론에 가장 강하게 도전한 연구자 중 한 명이 프린스턴 대학의 고생물학자 게르타 켈러(Gerta Keller)다. 그녀는 수십 년간 K-Pg 경계의 퇴적층을 분석하면서, 소행성 충돌이 멸종의 직접적 원인이라는 주류 해석에 지속적으로 이의를 제기했다.

켈러의 주장 중 하나는 칙술루브 충돌구가 K-Pg 경계보다 수십만 년 앞서 형성됐다는 것이다. 즉 소행성은 먼저 떨어졌지만, 생물 대멸종은 그 이후에 일어난 데칸 트랩 화산 활동과 더 직접적으로 연관될 수 있다는 논리다. 이 주장은 많은 비판을 받았고 지금도 논쟁 중이지만, 그녀의 연구는 소행성 단일 원인론이 얼마나 많은 반례와 씨름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멸종은 하나의 총알이 아니라 여러 발이 연속으로 쏘아진 결과였다."
— 게르타 켈러의 연구 입장을 요약하면 대략 이런 표현이 어울린다.

학계에서 그녀의 견해가 전폭적으로 수용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주류와 꽤 오랜 시간 대립각을 세워왔다. 하지만 그 대립이 불편할지라도, 그런 반론이 없었다면 소행성 가설은 지금보다 훨씬 덜 정밀하게 다듬어졌을 것이다. 과학은 결국 그런 방식으로 발전한다.

멸종 전부터 이미 기울고 있었다

어쩌면 가장 덜 알려진 이야기가 이것이다. 공룡은 소행성이 떨어지기 훨씬 전부터 이미 다양성이 감소하는 추세에 있었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2016년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백악기 후기, 즉 멸종으로부터 1000만~2000만 년 전 시점부터 공룡의 종 수와 분류군 다양성이 전반적으로 줄어들고 있었음을 분석했다. 특히 초식 공룡들의 다양성 감소가 두드러졌다고 한다. 초식 공룡이 줄면 그것을 먹고 사는 육식 공룡도 영향을 받는다. 생태계의 균형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는 신호다.

왜 그랬을까. 여기서 해수면 변화와 기후 냉각이 등장한다.

백악기 말의 기후 변화

백악기는 전반적으로 따뜻하고 습한 시기였다. 극지방에도 얼음이 없었고, 해수면은 지금보다 수십 미터 높았다. 그런데 후기로 갈수록 기후는 조금씩 냉각되기 시작했고, 해수면도 낮아지는 추세를 보였다.

해수면이 낮아지면 얕은 바다, 즉 대륙붕 지역이 육지로 드러난다. 백악기 동안 북아메리카를 남북으로 가로질렀던 광대한 내해(Western Interior Seaway)도 이 시기에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이 내해 주변의 다양한 생태환경이 사라지면서, 그곳에 적응해 살던 생물들도 서식지를 잃기 시작했다.

기온 냉각 역시 문제였다. 공룡의 체온 조절 방식에 대해서는 아직 논쟁이 있지만, 대형 동물일수록 환경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 먹이가 되는 식물의 분포가 바뀌면, 그것을 먹는 동물도 따라 이동하거나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런 변화가 수백만 년에 걸쳐 쌓였다면, 소행성이 충돌하기 훨씬 전부터 공룡의 생태계는 이미 적잖이 약해진 상태였을 가능성이 높다.

새는 공룡이다 —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

공룡이 완전히 멸종했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 정확하지 않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조류, 즉 새들이 바로 공룡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수각류(Theropoda) 공룡 중 일부 계통이 조류로 진화했고, 그 계통이 K-Pg 경계를 넘어 살아남았다.

그렇다면 왜 새는 살아남고 비조류 공룡은 멸종했을까. 연구자들은 몇 가지 가능성을 제시한다. 우선 크기다. 소형 동물은 대형 동물보다 에너지 소비가 적고, 먹이 조건이 나빠져도 더 오래 버틸 수 있다. 새들의 조상은 이미 소형화된 수각류였다.

또한 새들의 먹이 다양성도 중요했을 것이다. 씨앗을 먹을 수 있는 종들은 식물이 대부분 죽은 이후에도 씨앗 뱅크에서 살아남은 씨앗을 먹으며 버틸 수 있었다. 반면 신선한 잎이나 살아있는 동물에 의존하던 대형 공룡들은 먹이 공급이 끊기면서 급격히 무너졌을 것이다.

날 수 있다는 능력도 무시할 수 없다. 피해가 심한 지역에서 피해가 덜한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은 생존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 수 있다. 다만 이 요인들이 어떻게 조합되어 어떤 종이 살아남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어쨌든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새들은 그 대멸종을 통과한 생존자들의 후손이다. 참새 한 마리가 창가에 앉아 있을 때, 그 작은 몸속에 1억6000만 년 공룡 역사의 끝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면 묘하게 경이로운 기분이 든다.

복합 원인론 — 그래서 결론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살펴본 것들을 정리해보자. 소행성 충돌, 데칸 트랩 화산 폭발, 수백만 년에 걸친 다양성 감소, 해수면 하강과 서식지 축소, 기후 냉각. 이것들은 각각 따로 놓으면 어느 하나도 공룡 멸종의 '완전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

소행성 충돌만으로 설명하면, 왜 일부 동물들(악어, 거북, 조류)은 살아남았는지가 어색해진다. 화산 활동만으로 설명하면, 충돌 직후의 급격한 변화가 설명되지 않는다. 장기적인 다양성 감소만으로 설명하려 하면, 최후의 급격한 종말이 왜 그렇게 갑작스러웠는지가 풀리지 않는다.

오늘날 많은 고생물학자들이 동의하는 방향은 복합 원인론이다. 백악기 말, 공룡의 생태계는 이미 기후 변화와 서식지 축소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거기에 수십만 년에 걸친 데칸 트랩의 화산 활동이 기후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행성이 충돌하면서 이미 약해진 시스템에 돌이킬 수 없는 결정타를 날렸다. 어느 하나가 단독으로 일어났다면 공룡이 살아남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겹쳤기 때문에, 결과는 돌이킬 수 없었다.

과학이 여전히 답을 찾는 이유

6600만 년 전의 일을 지금 시점에서 완벽하게 재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화석 기록에는 공백이 있고, 당시의 기후 데이터는 간접적으로만 복원된다. 연구자마다 같은 증거를 보고 다른 해석을 내린다. 그래서 공룡 멸종 연구는 지금도 활발하고, 지금도 논쟁 중이다.

어쩌면 그게 이 주제가 여전히 매력적인 이유일지도 모른다. 지구상 역사상 가장 성공한 육상 동물 집단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생태계의 취약성, 기후 변화의 파급력, 그리고 생존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이어진다.

우리는 지금 기후가 빠르게 바뀌고, 생물 다양성이 줄어드는 시대를 살고 있다. 공룡 멸종의 복합 원인론은 단지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

핵심 정리

공룡 멸종은 소행성 충돌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 6600만 년 전 칙술루브 소행성 충돌(K-Pg 경계)은 결정적 사건이었지만, 그 이전부터 데칸 트랩 화산 폭발, 해수면 하강, 기후 냉각, 생태계 다양성 감소가 이미 진행 중이었다. 루이스·월터 알바레스의 소행성 가설, 게르타 켈러의 화산 중심론 등 다양한 시각이 오늘날에도 논의되고 있다. 그리고 새는 이 대멸종을 통과해 살아남은 공룡의 후손이다. 멸종은 단일 사건이 아니라 복합적 재앙의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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