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라노사우루스 렉스는 영화가 만들어낸 이미지와 실제 사이에 가장 큰 간극이 있는 공룡이다. 달리는 지프차를 쫓고, 유리창을 통해 아이들을 들여다보던 그 공룡. 그런데 실제 T. rex는 그렇게 달릴 수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체중 9톤짜리 이 동물은 어떻게 먹고 살았을까. 뼈와 발자국, 두개골 구조가 말해주는 진짜 사냥꾼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기본 수치 — 숫자로 보는 T. rex
- 전장: 약 12~13m
- 체중: 약 8~14톤 (추정치에 따라 차이 있음)
- 두개골 길이: 약 1.5m
- 이빨 길이: 최대 약 30cm (뿌리 포함), 노출 부분 약 15cm
- 이빨 개수: 약 50~60개
- 교합력(물어뜯는 힘): 약 35,000~57,000N — 현존 동물 중 가장 강한 악어(약 16,000N)의 2~3배
- 생존 시기: 백악기 후기 약 6800만~6600만 년 전
- 서식지: 북아메리카 서부 (현재의 몬태나, 사우스다코타, 와이오밍 일대)
달리기 논쟁 — 정말 시속 70km가 가능했을까
영화 속 T. rex는 차를 쫓아갈 만큼 빠르다. 하지만 최근 연구들은 이 이미지에 의문을 제기한다.
체중 분석
8~14톤의 체중을 지탱하는 다리뼈가 뛰는 충격을 견디려면 뼈가 지금보다 훨씬 두꺼워야 했다. 현재 화석의 뼈 두께는 빠른 달리기에 필요한 구조와 맞지 않는다는 연구가 있다.
보행 시뮬레이션
2021년 네덜란드 연구팀이 골격 구조와 근육량을 토대로 시뮬레이션한 결과, T. rex의 실제 이동 속도는 걷기 기준 시속 약 4.6~8km로 추정됐다. 이것은 인간의 빠른 걷기 속도와 비슷하다. 그렇다면 T. rex는 느린 동물이었을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속보 수준의 빠른 이동은 가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두개골이 말해주는 것 — 감각 능력
후각: 두개골 내부의 후각 구근(olfactory bulb)이 현존 조류의 것보다 훨씬 컸다. T. rex는 후각이 극도로 발달한 동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수 킬로미터 밖의 썩은 고기 냄새도 감지했을 것이다.
시각: 안와(눈구멍)가 앞을 향해 있어 양안 시야각이 약 55도. 현존 맹금류 수준의 입체 시각을 가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청각: 달팽이관 구조 분석에 따르면 저주파 음역대에 특히 민감했던 것으로 보인다. 멀리서 나는 소리를 잘 포착했을 것이다.
청소동물이었나, 사냥꾼이었나
청소동물 가설: 잭 호너(Jack Horner)를 중심으로 일부 연구자들이 주장. 작은 팔, 느린 이동 속도, 발달한 후각이 청소동물에 적합하다는 논리.
사냥꾼 증거: 에드몬토사우루스 꼬리뼈에서 T. rex에게 물렸다가 회복된 흔적이 발견됐다. 죽은 먹이에게 물린 뼈에는 회복 흔적이 생길 수 없다. 즉, 살아있는 개체를 물었다는 직접 증거다.
현재 주류 견해: T. rex는 기회주의적 포식자. 사냥도 하고, 청소도 했다. 이는 현존하는 대형 포식자(사자, 하이에나 등)와 비슷한 전략이다.
짧은 팔의 비밀
T. rex의 앞발은 체구에 비해 극단적으로 짧다. 약 1m 길이에 발톱이 두 개. 그 기능에 대한 여러 가설이 있다.
- 교미 시 암컷을 잡아두는 데 사용했다는 가설
- 땅에서 일어날 때 지지대로 사용했다는 가설
- 기능을 거의 잃어가는 퇴화 단계라는 가설
- 집단 먹이 활동 중 다른 T. rex에게 물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진화했다는 가설 (최근 제시)
T. rex는 단순한 괴물이 아니다. 극도로 특화된 감각, 압도적인 교합력, 기회주의적 생존 전략을 갖춘 정교한 포식자였다. 그리고 그 정체는 아직도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