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책을 보면 하늘 위에 반드시 한 마리쯤 날고 있는 친구가 있다. 길쭉한 머리 뒤로 뾰족한 볏이 솟아 있고, 날개를 활짝 펼친 프테라노돈이다. 이름에 '-사우루스'가 안 붙어서 놓치기 쉽지만, 엄밀히 말하면 프테라노돈은 공룡이 아니다. 공룡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익룡(Pterosaur)'이다. 하지만 날개 펼치면 7m, 현대 경비행기와 맞먹는 크기의 이 존재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공룡 시대를 말하긴 어렵다. 이 글에서는 익룡의 비행 원리·해부학·생태, 그리고 공룡과의 관계까지 깊이 파헤친다.

▲ 백악기 바다 위를 활공하는 프테라노돈
기본 정보
- 학명: Pteranodon longiceps (이빨 없는 날개, 긴 머리)
- 생존 시기: 백악기 후기, 약 8,800만~8,000만 년 전
- 서식지: 북아메리카 내륙 바다 (지금의 캔자스 일대)
- 날개 길이: 약 5.5~7m (경비행기급)
- 몸무게: 약 20~40kg (추정)
- 키: 약 1.8m (서 있을 때)
- 식성: 어식 (물고기 위주)
- 비행 속도: 시속 80km 추정
학명에서 알 수 있듯 프테라노돈에는 이빨이 없다. 현생 펠리컨이나 황새와 비슷한 부리로 물고기를 잡아먹었다. 날개 폭 7m는 요즘 쓰이는 2인승 경비행기와 비슷한 수준이다. 다만 몸무게는 훨씬 가벼웠다. 대형 도베르만 정도다. 이 극단적인 '크지만 가벼운' 설계가 프테라노돈을 하늘의 지배자로 만들었다.
비행의 비밀
1. 뼈가 거의 비어 있다
프테라노돈의 뼈는 놀라울 정도로 속이 비어 있다. 뼈 두께가 1mm에 불과한 부위도 있다. 새의 뼈와 같은 원리다. 대신 무게를 줄이는 만큼 구조는 특이한 교차 내부 격벽으로 강도를 유지한다. 이걸 현대 항공 공학으로 표현하면 '항공기 날개의 와플 내부 구조'에 해당한다. 최소 무게로 최대 강도를 뽑는 설계다.
2022년 런던 자연사박물관의 바이오메카닉스 연구에서는 프테라노돈 뼈의 강도 대비 무게 비율이 현대 항공기 알루미늄합금과 비슷하거나 우수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수천만 년 전 진화가 도달한 설계가 현대 인간 기술과 맞먹는다는 건 꽤 충격적이다.
2. 날개는 가죽막, 그러나 단단했다
익룡의 날개는 박쥐처럼 가죽막(피막)으로 되어 있었다. 다만 두 가지 면에서 박쥐와 다르다. 첫째, 긴 넷째 손가락 뼈 하나가 날개 대부분을 지지한다. 새는 깃털로 날개를 만들고, 박쥐는 손가락 다섯 개로 지탱하는데, 익룡은 한 손가락에 의존한다. 둘째, 막 안쪽에 가느다란 섬유(actinofibril)가 나란히 뻗어 있어 날개가 찢어지는 걸 방지했다. 이 섬유는 박쥐에는 없는 구조다.
이 섬유는 현대 패러글라이더 캐노피의 '리브(rib)' 구조와 놀랄 만큼 유사하다. 공기 저항이 변해도 날개 형태를 유지하는 원리. 익룡이 효율적인 활공을 할 수 있었던 핵심 메커니즘이다.
3. 날았나, 활공만 했나
오랫동안 "프테라노돈은 바람 타고 활공만 했지 스스로 날갯짓해서 날지는 못했다"는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2020년 리버풀 대학 연구에서 익룡의 흉근 구조를 정밀 분석한 결과, 능동 비행이 가능했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륙 방식이 특이한데, 두 다리로 박차고 뛰어오르는 게 아니라 네 발을 땅에 짚고 V자로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 뒤 날갯짓을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종의 '4족 점프 이륙'이다.
이 독특한 이륙 방식 덕분에 거대한 날개 크기에도 불구하고 땅에서도 쉽게 날아오를 수 있었다. 새나 박쥐보다 더 효율적인 방식이다.
볏의 역할
머리 뒤로 길게 뻗은 볏은 프테라노돈의 상징이다. 수컷의 볏이 암컷보다 훨씬 크다는 점이 확인됐다. 그래서 성적 과시 기관이 주 기능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공작 꼬리와 같은 역할. 일부 연구에서는 "비행 시 방향타 역할도 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주류 의견은 아니다.
2018년 Nature 연구에서는 볏의 크기와 짝짓기 성공률의 상관관계를 통계적으로 분석했는데, 볏이 큰 수컷일수록 화석에 번식 흔적이 더 많이 남았다는 결과가 나왔다. 공작새의 꼬리처럼 '불필요해 보이는 거대한 장식이 짝짓기에서는 유리한' 현상이 익룡에게도 적용된 셈이다.
먹이와 생태
프테라노돈의 뱃속 내용물 화석이 여러 건 발견됐다. 그 안에는 작은 물고기, 오징어, 심지어 익룡 자기들끼리 먹은 흔적도 있다. 주 서식지가 바다 위였기 때문에, 수면을 스치며 부리로 물고기를 낚아채는 방식이 유력하다. 현생 갈매기나 펠리컨과 비슷한 전략이다.
수명 추정은 어렵지만, 뼈 성장선 분석으로 30년 이상 살 수 있었다는 분석이 있다. 공룡 시대의 '장수' 동물 중 하나다. 성체가 되는 데 약 3~5년이 걸렸다.
사회성은 높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프테라노돈 화석이 집단으로 한 지역에서 많이 발견되는 걸 보면, 현생 갈매기나 펠리컨처럼 번식기 콜로니를 형성했을 가능성이 있다.
자주 묻는 오해들
Q. 프테라노돈은 공룡이다?
A. 아니다. 공룡은 엉덩이뼈 구조가 특정한 분류군이다. 프테라노돈은 공룡과 가까운 친척(지배파충류)이지만 엄밀히 분류하면 별개다. 일반 대중과 학자 사이의 가장 큰 용어 격차 중 하나.
Q. 하늘의 티라노사우루스라 불리나?
A. 프테라노돈은 최상위 포식자가 아니었다. 물고기를 잡아먹는 어식동물이었다. 오히려 더 큰 육식 익룡 퀘찰코아틀루스가 '하늘의 절대자' 타이틀에 가깝다. 날개 12m에 체중 200kg, 작은 공룡까지 사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Q. 박쥐와 같은가?
A. 둘 다 가죽 날개로 비행하지만 전혀 다른 계통이다. 프테라노돈 멸종 후 수천만 년이 지나서야 박쥐가 진화했다. 비행이라는 공통 결과에 각자 다른 방식으로 도달한 '수렴 진화'의 예시다.
Q. 프테라노돈은 물속에서도 활동했나?
A. 잠깐은 가능. 수면에 앉아 쉬는 장면이 복원된다. 하지만 오래 헤엄치기는 어려웠을 것. 현생 앨버트로스와 비슷한 패턴으로 볼 수 있다.
한국과의 접점
한국에는 프테라노돈 화석이 없지만, 익룡 발자국 화석은 있다. 경상남도 해남과 고성의 백악기 지층에서 발견된 익룡 발자국은 날개 크기 3m급 소형 익룡의 것이다. 프테라노돈과 같은 족보 상에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해남 우항리의 익룡 발자국 화석지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케이스다. 진흙 위에 찍힌 익룡 발자국이 수백 개 남아 있다. 한 번 가볼 만한 곳이다.
실물 복제 골격은 서대문자연사박물관 2층 천장에 매달려 있다. 6m 가까운 날개가 펼쳐진 모습은 실제로 보면 압도적이다. 한 번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면, 이런 생물이 진짜로 하늘을 날아다녔다는 사실이 새삼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해남공룡박물관에도 익룡 전시 코너가 있다.
문화 속 프테라노돈
프테라노돈은 수많은 영화·다큐에 등장한다. '쥬라기공원 3'(2001)에서 공격 장면, '쥬라기 월드'(2015)에서 대규모 탈출 장면이 유명하다. BBC 'Walking with Dinosaurs'(1999)에서는 번식기 콜로니가 사실적으로 묘사됐다.
게임 '아크: 서바이벌 이볼브드'에서는 길들여 타고 다닐 수 있는 마운트로도 인기다.
정리
- 프테라노돈은 공룡이 아닌 익룡. 같은 시대를 살았을 뿐이다.
- 날개 7m, 몸무게 30kg. 비행기 수준 설계로 하늘을 점령했다.
- 능동 비행 가능. 네 발 이륙이라는 특이한 방식으로 날아올랐다.
다음 글에서는 다시 땅으로 내려와 공룡 시대 최고의 라이벌 관계를 다뤄본다. 티라노사우루스 vs 트리케라톱스 — 실제로 싸우면 누가 이겼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