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공룡은 냉혈동물로 그려졌다. 파충류의 친척이니 당연하다는 논리였다. 그런데 1960년대부터 이 전제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지금은 완전히 다른 결론으로 가고 있다. 공룡의 뼈를 자르면 그 안에 답이 있다. 성장 속도, 뼈 조직의 구조, 동위원소 비율. 세 가지 증거가 가리키는 방향은 하나다. 공룡은 우리가 생각하던 냉혈 파충류가 아니었다.
냉혈과 온혈, 그 사이 어딘가
- 냉혈동물(변온동물): 체온이 외부 환경에 따라 변함. 악어, 도마뱀이 대표적
- 온혈동물(항온동물): 스스로 열을 생산해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 포유류, 조류
- 중간형(메소서미): 어느 정도 체온 유지는 되지만 완전한 항온은 아닌 상태
- 대형 공룡 추정 체온: 약 35~40℃ (악어 25~30℃, 인간 37℃)
- 핵심 연구 방법: 뼈 성장선 분석(osteohistology), 산소 동위원소 비율 분석
과학은 냉혈/온혈이라는 이분법 자체를 버리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공룡은 그 중간 어딘가에 있었고, 종마다 달랐을 가능성도 높다.
증거 1 — 뼈 조직이 말한다
뼈를 자르면 나이테처럼 생긴 성장선이 보인다. 이 성장선이 조밀하게 모여 있으면 천천히 자란 것이고, 성글게 퍼져 있으면 빠르게 자란 것이다. 악어나 도마뱀 같은 냉혈동물은 성장선이 좁고 조밀하다. 그런데 공룡 뼈를 잘라보면 포유류나 조류처럼 성글고 넓은 패턴이 나온다. 혈관이 촘촘하게 박혀 있고, 이는 빠른 세포 대사와 성장을 뜻한다. 냉혈동물은 이런 뼈 조직 패턴을 만들 수 없다. 빠른 성장은 높은 대사율을 필요로 하고, 높은 대사율은 내열 생산 능력이 있다는 의미다.
증거 2 — 산소 동위원소가 체온을 기록했다
뼈에 박힌 산소 동위원소 비율은 형성될 당시의 체온 정보를 담고 있다. 2011년 사이언스에 발표된 연구에서 여러 공룡 종의 이빨 화석을 분석한 결과, 몸통에 가까운 뼈일수록 높은 체온 기록이 나왔다. 사지에서 몸통 쪽으로 갈수록 온도가 높아지는 이 패턴은 내열 생산 능력을 가진 동물의 특징이다. 냉혈동물에서는 이런 온도 구배가 나타나지 않는다. 화석 자체가 체온계 역할을 한 셈이다.
증거 3 — 두꺼운 깃털과 솜털 화석
온도를 유지하려면 단열재가 필요하다. 깃털이 그 역할을 한다. 중국 랴오닝성에서 발견된 수많은 공룡 화석에는 솜털 형태의 원시 깃털이 보존되어 있다. 솜털은 날기 위한 구조가 아니라 단열을 위한 구조다. 현재 새와 포유류도 어린 개체나 추운 환경의 종에서 단열 솜털이 발달한다. 공룡, 특히 수각류 계열이 솜털을 가졌다는 건 체온 유지가 그만큼 중요했다는 방증이다.
대형 초식공룡은 달랐다 — 관성 체온 유지
70톤짜리 용각류 이야기는 좀 다르다. 몸집이 워낙 크면 체온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 표면적 대비 부피가 작을수록 열 손실이 느리다. 코끼리도 온혈동물이지만 냉각이 잘 안 돼서 귀를 부채처럼 흔든다. 대형 용각류는 스스로 열을 생산하지 않아도 거대한 몸집 자체가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시켜줬을 가능성이 있다. 이를 '관성 체온 유지(gigantothermy)'라고 부른다. 이 경우 냉혈도 온혈도 아닌 제3의 방식이다.
한반도 기후와 공룡 체온
백악기 한반도는 지금보다 훨씬 따뜻하고 습한 아열대 기후였다. 평균 기온이 지금보다 약 10℃ 이상 높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환경이라면 냉혈동물도 충분히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었겠지만, 한반도에서 발견된 다양한 공룡 발자국 화석들이 계절을 가리지 않고 남겨진 것으로 보면, 온혈 혹은 그에 준하는 체온 유지 능력이 있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정리
공룡 체온에 대해 기억할 세 가지.
- 뼈 조직과 동위원소 분석은 공룡이 냉혈동물이 아니었음을 강하게 지지한다.
- 소형 수각류는 온혈에 가까웠고, 대형 용각류는 거대한 몸집 자체로 체온을 유지했을 가능성이 있다.
- 냉혈/온혈 이분법은 공룡에게 맞지 않는다. 그 중간 어딘가에 있었고, 지금도 연구 중이다.
냉혈 파충류라는 낡은 이미지는 이제 교과서에서도 지워지고 있다. 공룡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역동적인 생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