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라기공원’의 그 유명한 장면. 거대한 티라노사우루스가 두 발로 우뚝 서서 하늘을 향해 입을 활짝 벌리고 우렁찬 포효를 내지릅니다. 그 한 번의 포효에 차창이 흔들리고, 등장인물의 가슴이 떨리고, 극장의 우리들마저 등받이를 꽉 움켜쥐었습니다. 어쩌면 그 장면은 지난 30년 동안 우리가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공룡 = 포효’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낸 가장 큰 주범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최근 학계의 분위기는 정반대입니다. “공룡은 포효하지 않았다. 오히려 비둘기처럼, 혹은 악어처럼 낮고 무거운 소리를 냈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영화의 그 우렁찬 포효는 사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소리, 즉 영화 음향감독들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가짜 소리’였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공룡이 정말 어떤 소리를 냈을지, 그 흥미로운 추적의 여정을 함께 따라가 보겠습니다. 영화의 그 포효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부터, 화석에서 들리는 공룡의 진짜 ‘목소리’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영화의 그 포효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1993년 ‘쥬라기공원’ 제작 당시, 사운드 디자이너 게리 라이드스트롬(Gary Rydstrom)은 매우 흥미로운 작업을 했습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공룡의 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그는 현존하는 동물의 소리를 잘게 조각내 합성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티라노사우루스의 포효에는 다음 소리들이 섞여 있습니다.
- 새끼 코끼리의 울음소리
- 호랑이의 으르렁대는 소리
- 악어의 낮은 소리
- 그리고 라이드스트롬이 키우던 잭 러셀 테리어의 짖는 소리
의외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새끼 코끼리의 울음소리’였습니다. 라이드스트롬은 이 다양한 소리를 디지털 도구로 늘리고, 낮추고, 겹치는 방식으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거대 포식자의 포효’를 만들어냈습니다.
그 결과는 영화 역사에 길이 남는 음향 효과가 되었지만, 동시에 ‘공룡은 우렁차게 포효한다’는 잘못된 인식을 전 세계에 심어주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영화 속 티라노사우루스의 포효는 새끼 코끼리, 호랑이, 악어, 그리고 사운드 디자이너의 강아지 소리를 섞어 만든 ‘합성음’입니다.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소리를, 우리가 알고 있는 소리들로 ‘상상’해서 만든 셈입니다.
공룡의 ‘목소리’는 화석으로 남지 않는다
그렇다면 진짜 공룡의 소리는 어떻게 추적할 수 있을까요. 가장 큰 문제는 발성 기관의 대부분이 부드러운 연조직이라는 점입니다. 즉,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성대’, ‘후두’, ‘공기주머니’ 같은 기관은 뼈가 아니기 때문에 화석으로 거의 남지 않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다음 세 가지 단서를 종합해 공룡의 소리를 추적합니다.
- 화석에 남은 머리 볏이나 콧속 구조(공명실) — 직접적으로 소리 변형 기관
- 가장 가까운 친척의 발성 방식 — 공룡의 살아 있는 친척인 새와 악어를 비교
- 드물게 남아 있는 연조직 화석 — 새의 ‘명관(syrinx)’ 같은 연조직이 운 좋게 화석화된 경우
가장 가까운 친척, 새와 악어가 알려주는 것
공룡의 가장 가까운 살아 있는 친척은 두 그룹입니다. 하나는 직계 후손인 새, 다른 하나는 같은 ‘조류형 파충류(아르코사우리아)’ 분류 안에 속하는 사촌, 악어입니다. 이 두 그룹의 발성 방식을 비교하면, 공룡의 소리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새의 발성 기관 — 명관(syrinx)
새는 ‘후두’가 아니라 ‘명관’이라는 특수한 발성 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기관은 폐로 향하는 기관지가 갈라지는 지점에 있는 일종의 ‘V자 모양 소리 상자’입니다. 새가 그토록 다양하고 정밀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명관 덕분입니다. 그렇다면 공룡에게도 명관이 있었을까요.
2016년, 결정적 발견
2016년, 텍사스 대학교의 줄리아 클라크(Julia Clarke) 연구팀은 약 6,700만 년 전의 새 화석에서 명관 화석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새는 ‘베가비스(Vegavis)’라는, 공룡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초기 오리류였습니다. 그러나 의미심장한 것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비조류 공룡(non-avian dinosaurs)의 화석에서는 명관의 흔적이 단 한 번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단서입니다. 명관은 새가 새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비교적 늦게 생겨난 기관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거대한 비조류 공룡들(티라노, 트리케라톱스, 디플로도쿠스 등)은 새처럼 다양하고 복잡한 노래를 부르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악어의 소리 — ‘저주파의 떨림’
그렇다면 공룡은 어떤 소리를 냈을까요. 학자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악어’로 향했습니다. 악어는 사실 매우 다양한 소리를 냅니다. 새끼 악어는 ‘끽끽’ 우는 소리를 내고, 어미 악어는 깊은 ‘우우우’ 소리로 새끼를 부릅니다. 짝짓기 시즌의 수컷 미시시피악어는 몸 전체를 떨면서 사람이 들을 수 없을 정도의 저주파 소리를 내는데, 이 소리에 의해 수면이 잘게 떨리는 모습이 마치 ‘끓는 물’처럼 보이는 장면은 자연 다큐멘터리의 명장면 중 하나입니다.
악어는 후두 안의 성문 주위 점막이 진동해 소리를 만듭니다. 흥미롭게도 이 소리는 ‘입을 벌리지 않은 채’로도 만들 수 있습니다. 즉, 거대한 입을 열고 ‘포효’하는 것이 아니라, 입을 다문 채로 몸 전체에서 진동하듯 울리는 저음의 ‘부우우우’ 소리를 낸다는 점입니다.
가장 그럴듯한 그림 — ‘비둘기처럼 운다’
새의 명관이 없는 비조류 공룡들이, 새와 악어 사이의 중간 어디쯤에서 어떤 발성 기관을 가졌을지에 대한 가설은 다양합니다.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시각은 다음과 같습니다.
“대형 공룡은 입을 다문 채로 식도와 가슴의 공기주머니를 떨며, 비둘기나 타조의 ‘우우우’와 비슷한 낮고 무거운 저주파 울음을 냈을 것이다.”
‘닫힌 입’의 발성
2016년 줄리아 클라크 팀은 또 다른 흥미로운 연구를 발표했습니다. 그들은 현존하는 200종 가까운 새와 악어의 발성 방식을 분석한 뒤, ‘몸이 큰 동물일수록 입을 다물고 소리를 낸다’는 통계적 경향을 발견했습니다. 비둘기의 ‘구구’, 타조의 ‘우우우’, 에뮤의 ‘둥둥’ 같은 소리가 대표적입니다.
대형 공룡 역시 같은 패턴을 따랐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즉, 우리가 영화에서 보는 ‘입을 활짝 벌리고 포효하는’ 그림은 사실 거의 모든 면에서 잘못된 묘사일 가능성이 큽니다. 거대한 티라노사우루스는 오히려 거대한 비둘기처럼, 거대한 타조처럼, 거대한 악어처럼, 입을 다물고 가슴 깊은 곳에서 우우우 하고 울리는 묵직한 진동음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주파 진동은 또 하나의 큰 장점이 있습니다. 먼 거리까지 전달된다는 점입니다. 코끼리가 사람이 들을 수 없는 저주파로 동료와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의사소통하는 것처럼, 거대 공룡들 역시 광활한 백악기의 평원에서 동료, 새끼, 짝짓기 상대를 부르기 위해 저주파를 사용했을 것이라는 시각입니다.
예외의 주인공 — 파라사우롤로푸스의 ‘트럼펫 머리’
‘공룡은 모두 비슷한 저주파 울음을 냈다’는 큰 그림에 한 가지 예외가 있습니다. 바로 머리에 거대한 관 모양 볏을 가진 파라사우롤로푸스(Parasaurolophus)입니다.
머리 볏은 ‘악기’였다
이 초식공룡의 머리 뒤로는 길이 1미터에 가까운 거대한 ‘파이프’가 뻗어 있습니다. 1990년대 후반, 학자들은 이 볏의 내부를 CT 스캔으로 들여다봤고, 그 안이 매우 복잡한 관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마치 트럼본이나 호른처럼, 공기가 콧구멍에서 시작해 볏을 따라 길게 돌아 다시 입쪽으로 내려오는 구조입니다.
1997년, 뉴멕시코 자연사 박물관의 연구팀은 이 구조를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해, 실제로 그 안을 통과하는 공기가 어떤 소리를 만들어내는지 재현했습니다. 결과는 인터넷에 공개되어 큰 화제를 모았는데, 마치 거대한 안개경적(foghorn) 같은 ‘부오오오오’ 하는 묵직한 저음이었습니다.
학자들은 파라사우롤로푸스가 이 볏을 다음과 같은 용도로 사용했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 무리 내 의사소통 — 멀리 있는 동료에게 신호 전달
- 경고음 — 포식자의 접근을 동료에게 알림
- 짝짓기용 소리 — 수컷이 암컷을 부르거나 자신의 매력을 과시
- 개체 식별 — 머리 볏의 크기와 모양에 따라 미세하게 다른 소리가 나기 때문
다른 공룡들은 어땠을까
티라노사우루스
최신 연구들은 티라노사우루스의 두개골을 CT로 들여다본 뒤, 그 안에 비교적 큰 비강 공명실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즉, 그 안에서 만들어진 소리가 공명을 일으키며 더 크고 깊게 증폭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영화의 ‘포효’와는 다른, 땅이 진동할 정도의 묵직한 저음의 ‘우우우우’가 가장 그럴듯한 모습입니다.
거대 용각류(브라키오사우루스, 디플로도쿠스 등)
긴 목을 가진 거대 용각류는 그 자체로 거대한 ‘공명관’이 됩니다. 사실 이들의 발성은 코끼리의 저주파 소리와 비슷했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습니다. 사람이 들을 수 없는 영역까지 내려가는 깊은 진동음을 통해, 거대한 무리 안에서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고 짝짓기 상대를 찾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작은 수각류·랍토르류
벨로키랍토르 같은 작은 수각류는 어땠을까요. 이들은 현대 새와 가까운 관계이고, 몸집도 작기 때문에 비교적 고음의 소리를 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마치 화가 난 거대한 닭, 혹은 카소와리(호주의 거대한 새)의 위협음과 비슷한 그림이 그려집니다.
그렇다면 영화의 포효는 완전히 틀린 걸까
이쯤 되면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영화의 포효는 완전히 잘못된 묘사일까?” 답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입니다.
학자들이 동의하는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 대형 공룡이 위협 시 ‘우렁차고 무거운 소리’를 냈을 가능성은 충분히 높습니다. 그 소리의 ‘위협적인 분위기’는 영화와 비슷했을 수 있습니다.
- 그러나 그 소리는 사자나 호랑이처럼 입을 활짝 벌린 채 내는 ‘포효’가 아니라, 비둘기·악어·타조처럼 입을 다물고 가슴에서 만들어내는 ‘저음의 진동음’이었을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 또한 그 소리는 우리가 일상에서 듣는 음역대보다 훨씬 낮은 저주파였을 가능성이 높아, 만약 우리가 실제로 그 자리에 있었다면 ‘들었다’기보다는 ‘몸으로 느꼈다’는 표현이 더 적합했을 것입니다.
마치며 — 침묵의 거인들이 부르는 노래
오늘 우리가 함께 따라온 추적의 여정 끝에서, 한 가지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우리가 영화로 들어온 공룡의 포효는 ‘실재했던 소리’가 아니라 ‘상상된 소리’였다는 것. 그리고 진짜 공룡의 목소리는, 어쩌면 영화보다 훨씬 더 신비롭고, 훨씬 더 깊고 묵직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거대한 디플로도쿠스가 저녁 노을 속에서 동료를 부르는 ‘우우우우’ 소리. 파라사우롤로푸스의 무리가 머리 볏을 통해 만들어내는 묵직한 안개경적 같은 합창. 사냥에 나서기 직전, 어린 티라노사우루스가 어미의 옆에서 흉내 내는 작은 ‘구구’ 소리. 영화 한 편이 보여준 단조로운 포효보다, 이 그림은 훨씬 더 풍성하고 다양합니다.
고생물학은 단순히 ‘오래된 뼈’를 찾는 학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를 듣기 위해,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경을 보기 위해, 6,600만 년 전의 어느 오후로 우리를 데려가는 학문입니다. 다음에 ‘쥬라기공원’의 그 우렁찬 포효를 다시 들으실 때면, 잠시 상상력을 그쪽으로 살짝 옮겨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그 거인들의 진짜 목소리가, 어쩌면 지금 우리의 발밑 어딘가에서 여전히 울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지금까지 다섯 편에 걸쳐, 우리가 어릴 적부터 가지고 있던 공룡에 대한 익숙한 그림들이 최신 과학에 의해 어떻게 다시 그려지고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거대한 라이벌의 진짜 모습, 짧은 앞다리의 미스터리, 100년 동안 이어진 체온 논쟁, 영화 속 거짓말과 진짜 벨로키랍토르, 그리고 오늘의 ‘침묵의 거인들의 진짜 목소리’까지. 공룡의 세계는 여전히 우리가 풀어야 할 질문으로 가득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또 어떤 새로운 미스터리로 찾아뵐지,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