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6600만 년 전, 지름 약 10~15km짜리 소행성이 지금의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충돌했다. 충격 속도는 초속 약 20km. 폭발 에너지는 현존 핵무기 전체를 동시에 터뜨린 것의 수십만 배를 넘는 수준이다. 그날 하루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이후 몇 달 몇 년 동안 지구는 어떻게 변했는지. K-Pg 경계(백악기-팔레오기 경계)가 기록한 지구 최악의 하루를 들여다본다.
충돌 당일의 타임라인
- 충돌 직후 수초: 지름 약 180km짜리 충돌구 형성, 주변 수백 킬로미터 즉시 소각
- 충돌 후 수분: 지진파 전 세계 전달 (규모 약 11~12 추정), 거대 쓰나미 발생
- 충돌 후 수시간: 충돌 분출물이 대기권 밖으로 나갔다가 재진입하며 대기 가열
- 충돌 후 수일: 화재 연기와 분출된 먼지가 대기층 전체를 덮기 시작
- 충돌 후 수개월~수년: 햇빛 차단 → 식물 광합성 중단 → 먹이사슬 붕괴
- 충돌 후 수십 년: 기온 급락 → "충돌 겨울(impact winter)" 지속
충돌 당일 가장 치명적이었던 것 — 열 복사
충돌 후 몇 분에서 몇 시간 사이가 실제로 가장 치명적인 구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충돌로 튕겨나간 암석과 먼지 파편이 대기권 밖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떨어지면서 대기를 뜨겁게 달궜다. 일부 연구에서는 이 과정에서 지표 온도가 수십 분 내에 수백 도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충돌 지점에서 멀리 떨어진 북아메리카 내륙에서도 이 열 복사를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직접적인 폭발보다 이 열 복사가 더 넓은 범위에서 즉각적인 피해를 입혔다는 연구가 있다. 땅굴을 파거나 물속에 있던 동물들이 생존율이 높았던 이유도 이 열 복사를 피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지구 반대편에서도 피해는 있었다
충돌 지점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도 안전하지 않았다. 지진파는 전 세계를 돌았다. 쓰나미는 멀리 유럽과 아시아 해안까지 도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반도가 위치한 동아시아 지역도 쓰나미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직접적인 열 복사와 충격파보다는 이후 몇 달간의 햇빛 차단과 기온 하강이 장기적으로 더 큰 피해를 입혔다.
왜 새는 살고 공룡은 죽었나
이 질문이 K-Pg 대멸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비조류 공룡은 전멸했는데 조류는 살아남았다. 연구자들이 제시하는 주요 원인은 몇 가지다. 우선 몸집이 작았다. 소형 동물일수록 적은 먹이로 생존할 수 있다. 잡식성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씨앗을 먹는 동물은 식물 광합성이 중단된 환경에서도 땅에 쌓인 씨앗을 먹으며 버틸 수 있다. 또한 빠른 번식이 가능했다. 개체수가 급감해도 짧은 세대 주기로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다. 이 모든 조건을 동시에 갖춘 계통이 살아남아 오늘날 약 1만 종의 조류로 이어졌다.
K-Pg 경계층 — 지층 속에 박힌 그날의 흔적
전 세계 지층에서 백악기와 팔레오기 사이에는 얇은 점토층이 있다. 이 층에는 이리듐(iridium)이 지각 평균보다 수십 배 높은 농도로 포함돼 있다. 이리듐은 지각에는 드물지만 소행성에는 풍부한 원소다. 소행성 충돌이 K-Pg 대멸종의 원인임을 확인해준 결정적 증거다. 한반도에서도 이 경계층이 일부 지역에서 확인된다. 그날의 흔적이 한반도 지층 속에도 새겨져 있다.
정리
K-Pg 대멸종에 대해 기억할 세 가지.
- 충돌 당일 가장 치명적이었던 건 열 복사였다. 폭발보다 넓은 범위를 빠르게 태웠다.
- 장기 피해는 햇빛 차단과 먹이사슬 붕괴였다. 충돌 겨울이 수년간 지속됐다.
- 조류가 살아남은 이유는 소형 몸집, 잡식성, 빠른 번식의 조합이었다. 공룡은 새로 진화해 지금도 살아있다.
6600만 년 전의 그날이 없었다면 오늘의 포유류 세상도, 인류도 없었다. 공룡의 멸종은 끝이 아니라 지구 생태계의 대전환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