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영화를 보면 티라노사우루스는 늘 두 가지 방식으로 등장한다. 아무것도 못 보는 멍청한 포식자이거나, 문 손잡이를 돌릴 만큼 영리한 사냥꾼이거나. 둘 다 과장이다. 그렇다면 실제 티라노사우루스의 지능은 어느 수준이었을까. 2023년 발표된 연구 결과는 기존의 통념을 상당 부분 뒤흔들었다. 뇌의 크기, 후각 능력, 신경 밀도까지 새롭게 분석한 결과를 정리한다.
기본 수치 — T. rex의 뇌를 숫자로
- 뇌 추정 무게: 약 400g (사람 뇌의 약 26%)
- 뇌 대 체중 비율(EQ): 0.3~0.5 (악어 0.1, 타조 0.5와 유사한 범위)
- 후각구 크기: 전체 뇌 대비 비율이 현존 포유류 중 최고 수준 코요테와 맞먹음
- 시각 처리 영역: 눈 간격 약 55cm, 양안 시야 약 55도 (인간 120도보다 좁지만 독수리와 유사)
- 생존 기간: 성체 기준 약 28~30년, 전성기는 18~28세 추정
수치만 보면 무조건 멍청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뇌가 크다고 똑똑한 게 아니고, 작다고 둔한 것도 아니다. 문제는 그 뇌를 어떻게 쓰느냐다.
지능을 가늠하는 세 가지 기준
1. 후각 — 단연코 최상위 포식자 수준이었다
티라노사우루스의 뇌에서 후각구(olfactory bulb)가 차지하는 비율은 놀라울 정도로 크다. 2008년 미국 오하이오 대학 연구팀이 CT 스캔으로 재구성한 결과, 티라노사우루스의 후각구 부피는 뇌 전체 대비 현존하는 조류 중 가장 뛰어난 후각을 가진 종들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쉽게 말하면 몇 킬로미터 밖의 사체 냄새를 맡거나, 은폐한 먹이의 위치를 추적하는 것이 가능했다는 뜻이다. 사냥인지 청소동물인지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는데, 후각 능력만 놓고 보면 두 가지 모두 능숙하게 했을 가능성이 높다.
2. 시각 — 영화 설정은 완전히 틀렸다
쥬라기공원에서 티라노사우루스는 움직임을 감지하는 시각만 가진 것으로 묘사됐다. 실제로는 정반대다. 눈구멍 방향이 어느 정도 앞을 향해 있어 양안 시야가 확보됐고, 이는 거리 판단 능력이 있었다는 의미다. 맹금류나 포유류 포식자처럼 먹이까지의 거리를 입체적으로 계산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눈 크기 자체도 컸기 때문에 야간 시력도 상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지한 먹이를 못 본다는 설정은 순전한 창작이다.
3. 뉴런 밀도 — 2023년 연구의 파장
2023년 밴더빌트 대학의 수제나 에르쿨라노-우젤 교수팀이 발표한 논문은 고생물학계를 잠깐 뒤흔들었다. 현존 파충류와 조류의 뉴런 밀도 비교 모델을 이용해 티라노사우루스의 전뇌 뉴런 수를 추정했더니, 개나 원숭이 수준이 나올 수 있다는 결론이었다. 이 연구는 T. rex가 도구를 사용하거나 문화를 가졌다는 주장이 아니라, 단순히 현존 파충류보다 인지 능력이 훨씬 뛰어났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다만 이 연구에 대해 반론도 만만치 않다. 조류와 파충류의 뉴런 밀도 모델을 공룡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아직 결론이 난 이야기는 아니다.
단독 사냥꾼인가, 협력 사냥꾼인가
캐나다 앨버타주에서 발견된 발자국 화석을 분석한 결과, 세 마리의 티라노사우루스류 발자국이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찍혀 있었다. 이 발자국들은 보폭 패턴이 서로 맞물려 있었고, 연구자들은 이를 무리 이동의 증거로 해석했다. 완전한 협력 사냥의 증거라고 보기는 아직 이르지만, 최소한 단독 행동만 한 것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생겼다. 지능이 어느 정도 있었기에 무리를 이뤄 이동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한국에서 발견된 티라노사우루스류의 흔적
한반도에는 T. rex 자체가 살지 않았다. T. rex는 백악기 후기 북아메리카 대륙에 국한된 종이다. 그러나 티라노사우루스류(Tyrannosauridae) 계통의 친척들은 아시아에도 살았다. 중국에서 발견된 구안롱(Guanlong), 즈청티라누스(Zhuchengtyrannus) 등이 그 예다. 한반도 역시 아시아 대륙과 연결돼 있었으므로 비슷한 계열의 대형 수각류가 통과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경남 고성 일대에서 발견된 대형 수각류 발자국이 그 간접 증거로 거론된다.
정리
티라노사우루스의 지능에 대해 기억할 세 가지.
- 후각은 현존 최상위 포식자 수준이었다. 먹이 탐지 능력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 시각도 상당했다. 움직임만 보는 동물이라는 영화 설정은 완전한 허구다.
- 뉴런 밀도 논쟁은 아직 진행 중이다. 원숭이 수준이라는 주장도, 그 반론도 모두 현재형이다.
지능이 높든 낮든, 6800만 년 전 지구 위에서 가장 강력한 포식자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다음 글에서는 그 강력한 사냥 능력을 뒷받침한 근육과 턱 구조를 다룬다.